이륙하고 있는 민간 항공기 [헤럴드DB]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중동 전쟁에서 상대방의 작전·통신 네트워크를 교란하기 위한 전자전(electronic warfare)이 전 세계 항공업계에 새로운 위험이 되고 있다.
드론과 미사일을 막기 위해 상대 네트워크에 보내는 ‘가짜(faked)’ 신호가 민간 여객기의 위치정보시스템(GPS)에까지 영향을 미쳐 비행경로를 잘못 지정하는 등 GPS 교란(spoofing·스푸핑)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SkAI 데이터 서비스(SkAI Data Services)와 취리히 응용과학대학 분석에 따르면 GPS 교란의 영향을 받는 항공편은 지난 2월 하루 수십 편이었으나, 8월에는 1100편이 넘을 정도로 급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항공업계는 GPS 교란이 약 1년 전부터 민간 여객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으며, 특히 최근 6개월간 가짜 GPS 신호가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짜 신호로 인해 GPS에 비행경로가 잘못 지정되는가 하면 시계가 이전 시간으로 재설정되고, 잘못된 경고가 발령되기도 했다.
작년 9월에는 GPS 교란으로 민간 항공기가 허가 없이 이란 영공으로 진입할 뻔한 일이 발생했고, 7월에는 사이프러스에서 출발한 에어버스 A320의 조종석 전자 지도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안내하기도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같은 달 착륙을 시도하던 보잉 787기종은 GPS 신호가 꺼지면서 지상에서 불과 50피트(약 15m) 상공에서 다시 이륙하는 등 아찔한 순간을 모면하며 두 번의 착륙을 포기하기도 했다.
GPS 교란은 대부분 전쟁 지역에서 상대 드론과 미사일을 막기 위해 가짜 신호를 보내는 데 따른 것으로 주로 이들 지역에서 발생했지만, 점차 전쟁 지역을 넘어 더 많은 민간 항공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신문은 “여객기는 GPS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조종석 시스템에 잘못된 정보가 유입되면 비행 중 몇 분 또는 비행 전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항공당국에 따르면 GPS 교란으로 일부 항공편 운항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는 큰 안전 위험이 발생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종사들은 잠재적 GPS 교란을 식별하고 대응하는 방법은 물론, 비상시에 대비해 GPS를 사용하지 않고 운항하는 시스템 교육도 받고 있으며, 당국과 항공사들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가짜 GPS 신호와 경고로 인해 운항 중인 조종사의 주의가 분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위성항법 수석 과학자인 켄 알렉산더는 “우리가 직면한 이런 문제로 조종사의 업무가 늘어나고 여기에 비상사태까지 겹친다면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mokiy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