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29일 장중 한때 160엔을 넘었다. 1990년 4월 이후 34년 만의 최고치(엔화 약세)로 심리적 마지노선이 깨진 것이다. 일본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다시 150엔대로 하락했지만 시장 불안감은 여전히 크다. 엔화 가치가 곤두박질 친 직접적인 원인은 ‘강달러’다.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전망과 중동 불안에 따른 강달러 현상이 아시아 외환시장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24일 155엔대가 뚫려 조마조마했던 엔화에 기름을 부은 건 일본 은행이다. 나흘 전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기준금리를 연 0~0.1%로 동결한 이후 기자회견에서 “기조적인 물가 상승률에 큰 영향은 없다”고 밝히면서 불을 당겼다. 엔저 때문에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미국과의 금리 차가 5.5%포인트로 벌어진 상태에서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 밀리고 일본은 금리를 더 올리지 않겠다는 게 확인되면서 자금 이탈을 불러왔다. 주목할 점은 최근 엔화 약세가 유독 가파르다는 데에 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올 들어서만 12.38% 하락했다 원화(-6.77%), 유로화(-3.37%), 캐나다 달러(-3.26%), 위안화(-2.06%), 파운드화(-1.9%) 등 주요국 통화 중 절하 폭이 가장 크다.
‘슈퍼 엔저’는 당장 우리 수출 기업에 부담이다. 자동차·철강 등 주요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주요 제조업종의 수출 대상 상위 10개국 중 5~7개국이 겹칠 정도로 경쟁적이다. 품질을 바탕으로 한 일본제품의 저가공세로 한국 기업의 판로가 좁아질 수 있다. 회복세를 보이는 수출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이다.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대책 마련과 함께 필요하다면 수출 기업에 세제· 금융지원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 관광붐을 더 부채질해 여행 수지 적자도 더 커질 수 있다. 지난 한 해만 일본을 찾은 한국인이 696만 명에 달한다. 외국인 관광객 3명 중 1명이 한국인일 정도다. 이런 분위기가 ‘슈퍼 엔저’로 더 강해질 수 있다. 올들어 지난 1월 85만명, 2월 81만명, 3월 66만명이 일본을 다녀왔다. 비용이 더 싸지면 지난해 방문객수를 넘어설 지도 모른다. 여행수지 적자가 더 벌어져 경상수지 악화와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관광 매력도를 높일 획기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
엔저 현상 주시와 함께 환율 관리도 더 촘촘히 해야 한다. 원·달러 환율이 1400선을 뚫은 게 얼마 전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추가 금리 인상설까지 나와 환율이 요동칠 가능성이 큰 만큼 변동성 관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