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州)에서 한 우크라이나군 포병이 러시아군을 향해 M777 곡사포로 포격을 가하고 있다. [로이터] |
“전쟁의 시대에는 스스로 무기와 탄약을 개발, 생산, 비축하지 못하고 우방국에 의존한다는 것은 약점이며,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우방국들의 군사지원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한 해가 저물고 2024년을 맞이하려고 한다. 올해는 전세계적으로 전쟁이 확산된 시대로 기억될 것 같다. 2022년부터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1년 10개월째 이어지고 있고, 금년 10월부터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여전히 계속되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모두에게 무기 지원을 하며, 사실상 2개 전쟁에 관여하는 중이다.
다음 전쟁은 대만 해협과 한반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때는 전세계에서 미국이 관여하는 4개의 전쟁이 발생한다는 의미가 된다. 과연 2024년 이후는 전쟁의 시대가 될 것인가? 그럴 경우 우리는 전쟁의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 영국 옥스퍼드와 협업하며 공개 데이터를 제공하는 ‘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에서의 전쟁 확산 경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데이터에 의하면, 국가 간의 전쟁은 1989년 이후 지금까지 32개년 중 8개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한 두번씩 있어 왔다.
1980년대 이후 10년 단위 구분에서도 1990년대와 2010년대를 제외하고는, 사상자 5000명 이상의 국가간 전쟁은 항상 있었다. 데이터가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전쟁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떨까? 이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지난 달에 타계한 미국의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의 안목을 호출해야 할 것 같다.
키신저는 외교의 지식이 역사와 경험의 맥락에서 얻어진다고 했다. 그는 지정학적 조건과 외교의 기술로 미국의 대외정책을 설계했던 저명한 전략가였다. 키신저는 자신의 저서에서 “주요 국가들이 가치를 공유하여 서로의 행동을 억제하거나 또는 국가들이 국익의 계산에 따라 자유롭게 관계를 조정할 수 있다면, 군비경쟁과 전쟁을 회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말에 의하면, 2024년 이후 세계에서 가치의 공유보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 경쟁이 주류가 되고, 공급망 재편 경쟁처럼 국가 간의 자유로운 관계 조정이 제한되는 현상이 계속된다면 전쟁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즉 미래는 전쟁의 시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까지 포함되는 4개의 전쟁에 대한 우리의 대비 방향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대목이다. 이때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상황을 참고해보면 어떨까?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기에 러시아군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성공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에서 미국과 서방의 무기와 탄약 지원에 대한 의존이 커졌다. 미국의 지원은 방어무기와 탄약으로부터 시작하여 금년 들어 공격무기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6월부터의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은 성과 없이 교착 상태인 듯이 보인다. 그런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은 이스라엘 지원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생겨났다. 최근에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 미국 의회의 반대 목소리로 인해 지연되는 중이며, EU의 지원 역시 회원국의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무기와 탄약의 생산과 비축을 우방국에게 의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지금은 미국과 서방의 군사 지원이 효과가 있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라도, 우크라이나군이 전선에서 뚜렷한 군사적 성과를 보여줄 때이기도 하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전쟁 목표는 영토 회복과 함께 미래의 장기적 안전 보장이므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역시 필요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논의는 2024년 7월에 개최될 NATO 정상회의에서 다루어질 전망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그 이전까지 의미 있는 군사적 성과를 얻어야 할 필요도 있다. 만약 NATO 가입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로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는 행정부까지 출범한다면, 우크라이나에게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전쟁의 시대에는 스스로 무기와 탄약을 개발, 생산, 비축하지 못하고 우방국에 의존한다는 것은 약점이며,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우방국들의 군사지원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인 듯 하다.
역사적으로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1942년 겨울까지 거듭 패전하면서, 미국으로부터의 많은 무기와 인프라 지원을 낭비하자, 미국 여론은 대 소련 군사지원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1943년 11월 들어 소련이 독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회복하는 군사적 성과를 거둔 다음에는 미국에서 군사지원 반대 여론은 사라졌고, 같은 해 테헤란 정상회담에서 소련은 미국과 대등한 지위로 정상회담에 참석할 수 있었다.
불확실성이 커진 현대 정치진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앞으로 4개 전쟁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면, 이처럼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우방국으로부터 군사 지원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 교훈은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공군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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