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도심을 2시간 가까이 암흑으로 몰아넣었던 정전사고 원인이 노후화된 변전소 설비 문제로 드러난 건 그동안 소홀했던 전력망 확충이 ‘발등의 불’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기를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전력망(송·배전망)이 부실하면 가정에 도달할 수 없고, 언제든 제2·3의 울산 정전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재확인했다. 울산 정전사고는 그런 면에서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로 봐도 무방하다. 최첨단시대라는 2023년 현재, 게다가 5대광역시 도심에서 어둠 속에 속을 까맣게 태웠을 시민들을 생각하면 반드시 책임 규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1차적인 책임은 전력망 확충을 전담해온 한국전력에 있다. 전력수요가 증가하면서 송변전 설비는 매년 늘었지만, 한전의 설비투자비는 2조원대에서 제자리걸음 해왔다. 그러다보니 전력망 확충은 고사하고 기존 선로를 유지·보수하는 데도 버거운 실정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크고작은 정전 사고가 줄을 이었다. 변전소에서 가정이나 사무실 등에 전기를 보내는 배전선로 고장으로 인한 정전 건수는 2018년 506건에서 2021년 735건으로 늘었고, 지난해 933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전력망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없이는 올해도, 내년도 정전사고가 늘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향후 더 큰 ‘정전대란’을 부를 수 있어 사안의 심각성을 더한다.
전정부 탓도 없지 않다. 한전은 지난 정부때 탈(脫)원전과 신재생에너지 강화 기조로 부실경영 수위가 높아져 적자는 더 쌓였고, 전력망 투자나 관리 여력을 상실했다고 하소연해왔다. 정부 기조에 따라 태양광 등 사업비중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에 매년 수조원을 쓸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설비투자는 한전 고유의 임무라는 점에서 방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과적으로 한전은 2조원대로 묶어두며 설비투자엔 인색한채, 정부 방침엔 돈을 펑펑 쓴 셈이 됐다. 최소한 전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한전 고위직들의 직무유기였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얼마전 ‘특별법’ 추진을 통해 한전 대신 직접 전력망 확충에 나서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다만 모든 전력망에 손대는 것은 아니다. 서해안 송전선로 같은 신성장 ‘대동맥’인 핵심 전력망에 대해서만 건설을 주도하기에 울산 사태 같은 일반 가구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적기의 전력공급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전력시설 투자로의 대전환에 분명 긍정적 신호다. 본격적인 겨울철에 돌입한다. 여름 못잖은 전력 성수기다. 또다른 정전사태는 국민에게 고통일 뿐이다. 확실한 정전방지책을 세울때다. 거듭 강조하지만, 문제는 ‘노후화된 전력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