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작 송길영의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는 ‘당신의 서사’라는 표현이 나온다. 서사는 ‘당신이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기여가 얼마만큼 치열했는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급조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오직 시간과 진정성으로 만들어진다. 요즘 시대에 대중은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 그 문제에 천착하고 매달렸는지를 살핀다. 거기서 진정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느닷없는 김포 서울 편입론이 터진 게 불과 며칠 전이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했다. 김포를 서울에 편입시키려면 차라리 서울과 인접한 고양, 광명, 과천, 구리, 하남과 같은 곳이 우선순위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는 ‘설마 고양, 광명, 과천, 구리, 하남과 같은 곳까지 서울에 편입시키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는 의미다. 그러나 여당은 대중의 그런 의문에 정확히 한 방을 날렸다. 편입 대상에 김포를 우선 검토하지만, 나머지 도시도 지역민의 요구에 따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다.
서울의 규모를 확대하려 한다면 진즉 여권에서 이 문제에 천착했어야 했다. 그러나 서울 메가시티론에는 그런 서사가 없다. 오랜 숙고 끝에 나온 안건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왜 행정구역을 변경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총선과 연관 지어서 해석한다. 이를 추진하는 여당에서도 이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문제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큰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국토 균형 발전에 대한 밑그림도 없이, 심각한 지방소멸에 대한 천착도 없이, 행정구역 개편이 선거용으로 등장한 것이다. 일단은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불리했던 국면을 전환했다고 여길 수도 있다. 혹여 여당의 생각대로 일부 행정구역 개편이 언젠가는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모든 것은 단기적인 이야기이다.
36년 전인 1987년에 개정된 우리 헌법은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가 국가에 있음을 명백히 선언했다. 이는 대도시로의 과도한 인구집중을 방지하고 국토의 균형 있는 인구 분산을 꾀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지난 1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됐다고 밝힌 것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을 포괄하는 첫 통합 계획을 윤석열 정부가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은 김포 서울편입론 때문에 여론의 주목받지 못했다.
서울 집중을 더 강화하려는 여당에 어떠한 서사가 있을까? 날로 심각해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 인구 급감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감은 여야 막론하고 정치권에 오랜 기간 화두였다. 차라리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이미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도 있는 마당에 지방시대위원회가 밝힌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필두로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을 강력하게 추진하면 어떨까. 평소 누구보다도 헌법 정신을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선언한 헌법을 존중하고 추진하면 이야말로 그의 서사로 남지 않을까.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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