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에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 공습으로 가자지구에 있는 건물 수백 채가 파괴됐다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제하는 민방위대가 밝혔다. [AFP] |
가을은 코끝으로 온다. 콧구멍을 휘감는 선선한 기운은 겨울을 대비하라는 신호다. 모든 걸 말려버릴 기세이던 폭염이 물러난 자리여서 더 그렇다. 가을은 특별하다. 공감각적이다. 언제 왔다가는 줄 모르게 낯을 가리지만 존재함을 물질로 증명해 시각을 찌른다.
보도블록에 상처 입은, 이름 모를 낙엽이 나뒹군다. 다 타버려 재가 됐다면 차라리 후련했을 텐데 군데군데 구멍 뚫려 우중충하게 널브러진 행색 탓에 심란하다. 눈에 쉼을 주던 초록은 바랬고 낙엽은 엊그제 내린 가을비를 눅눅하게 뒤집어쓰고 있다. 대놓고 해악인 집구석 곰팡이처럼 새카맣게 변하지도 못한 채다.
잎새의 자유낙하는 완전한 타의다. 나무가 살려고 이별을 택한 결과다. 태양 덕에 치열하게 푸르렀던 잎새는 햇살이 옅어지면 용도 폐기 수순이다. 수분과 영양분을 빼앗길 수 없는 나무는 나뭇가지와 잎 사이를 ‘떨겨층’으로 봉쇄한다. 잎새는 그렇게 힘없이 하강한다.
패잔병의 탄흔을 품고 누운 낙엽 위로 ‘딱’ 하는 소리가 날카롭게 퍼진다. 더 버티지 못해 추락한 열매의 비명이다. 매끈하게 유선형으로 빠진 하체 위로 브로콜리 모양의 모자를 썼다. 도심에 도토리일 리 만무했다. 수종은 영하 40도에도 견뎌 가로수로 흔하다는 ‘루브라 참나무’다. 매연이 들러붙은 열매를 먹어선 안 된다고 공무원이 알려줬다. 잎새도, 열매도 끝은 비극이지만 또 태어날 기약만 믿고 나무 주변에서 시위하는 것이리라.
시한부인 인명(人命)에 파멸을 부르는 전쟁이 가을의 인류를 삼키는 중이다.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의 ‘쌍(雙)전쟁’이다. 하나도 버거운데 엎친 데 덮쳤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테러가 촉발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수많은 아동·청소년의 생명을 무너뜨리고 있다. 교착 상태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끝 모를 소모전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중동에선 타협 없는 종교가, 동유럽에선 오도된 리더십의 충돌이 ‘부활이 불가능한’ 삶을 짓밟는다. “우리(미국)는 걸으면서 껌을 씹을 수 있다”는 미국 싱크탱크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의 이보 달더 최고경영자의 ‘쌍전쟁’ 수행 능력 과시를 부러워하기엔 공습받은 가자지구 병원에서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얼굴이 공포의 전이를 가속화한다.
냉엄한 국제정치판에서 ‘힘의 논리’를 부정하는 건 유아적이다. 정치·경제적으로 힘센 쪽이 세계를 움직여 왔다. 다만 그런 논리는 스러지는 생명이 또 다른 보복의 다짐으로 피를 부른다는 이치를 모른 체하는 하책에 불과하다.
전쟁이 비정하다면, 경제는 무정하다. 전쟁은 언제나 장바구니 안으로도 찾아와서다. ‘쌍전쟁’은 제3자에겐 부정적 경제지표를 부추겨 생계를 더 버겁게 하는 요인일 뿐이다. 한국도 안정적 흐름을 이어가던 물가가 이-팔 전쟁 양상에 따라 국제유가 등락폭이 커지는 불확실성이 가중돼 물가 대책을 내놓는 상황을 맞았다. 남들 사정을 아랑곳하기엔 내 코가 석 자다.
혼란을 말끔하게 정리할 소방수가 없다. 이-팔 전쟁이 세계에 각인시킨 건 ‘권력의 진공’ 상태다. 미국은 하마스의 기습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이스라엘의 복수심을 제어할 능력과 의지가 미국에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냉전 시기와 그 이후 경쟁자가 없던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유지된 기간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던 증상이다. 러시아도 군사적으로 한참 밑인 줄 알았던 우크라이나를 단박에 제압하기는커녕 체면만 구긴 세월이 2년을 향해가고 있다. 주요 국제 문제에 똑 부러진 입장을 내지 않는 중국은 자국 경제 문제에 대처하기도 버거운 모습이다.
‘영원한 강자’일 줄 알았던, 소위 강대국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우왕좌왕이다. 전쟁은 ‘권력 분열’의 신호도 부각한 꼴이다. ‘무정부 상태’로 가는 조짐인 현재 세계엔 언제, 누가 또 다른 테러·전쟁을 감행할지 가늠할 수 없다.
그러는 사이 세계 경제는 추진력이 약화하고 있다. 유럽에선 관광산업 덕분에 성장세를 보인 그리스·스페인, 아시아에선 인도·일본을 제외하면 경제 사정이 나아지는 국가를 찾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문제를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 돈줄을 죄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누그러뜨렸지만 이-팔 전쟁이 스텝을 헝클었다. 미국 경제는 연방준비제도(Fed)가 당황할 정도로 회복력을 보여 장기간 고금리 유지의 스탠스를 견지하고 있지만 이런 처방만으로 내년을 장담할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쌓인다.
‘세계의 경찰’을 자임했고 자유 진영의 맹주인 미국의 심산이 복잡하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이 ‘제3시대의 시작점’에 서 있다고 표현했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최근 내놓은 ‘미국의 힘의 원천’이라는 기고문에서다. 신문으로 치면 2개면은 족히 채우고도 남을 장문의 글엔 미국 혼자선 글로벌 이슈를 관장할 수도, 해결해서도 안 된다는 상황 판단이 담겨 있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빠르게 추억이 돼 가는 시기’에 개발됐고, 현재 문제는 상호의존 시대의 경쟁을 맞아 주요 과제에 적응할 수 있을지 여부라고 진단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권력의 새로운 현실을 이해하고 있고, 동맹·파트너가 있을 때 미국이 더 강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는 썼다. 미국이 ‘약방의 감초’처럼 지구촌 구석구석의 모든 이슈에 개입하지 않아도 되도록 동맹을 미국의 ‘힘의 새로운 기반’으로 활용하겠다는 얘기다. 생각이 같은 국가끼리 뭉쳐야 한다고 강조해 온 까닭이 다른 데 있지 않다.
냉정하게 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미국 우선주의’에 동맹 강화라는 겉옷을 입혔을 뿐, 미국만의 이익 수호라는 핵심 가치를 양보할 생각은 전혀 없는 셈이다. 설리번은 제3시대의 결과는 상당 부분 미국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이 지점에 주목한다. 미국이 국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걸 마뜩잖아하는 여론이 늘고 있다는 점을 권력 중심부가 자각하고 있다고 읽힌다. ‘바이든 대 트럼프’로 내년 11월 미국 대선이 치러질 공산이 큰 상황에서 글로벌 최강 권력이라도 유권자의 결정에 따라 언제 떨어질지 모를 잎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세계가 불화하는 가운데 한국엔 선거의 바람이 분다. ‘클리셰(진부한 말)’가 된 지 오래이지만 버려짐이 두려운 이들이 혁신의 간판을 부산하게 내건다. 최근 보궐선거 참패로 조급한 쪽이나 배신에 대한 응징을 놓고 분열 가능성이 있는 쪽 모두 강자라는 미몽에서 벗어나려는 시늉이다.
시도는 가상하지만 재방송이 너무 많았기에 상영될수록 지루하다. 정권 창출·유지가 목표인 결사체 속에서 이익의 합리적인 조율이라는 의무를 방기해 온 혐의를 세탁하려 해서다. 아직 더 뛸 체력이 분명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대에 진입해 세계 1위 경제국 미국에도 뒤처진다는 암울한 전망에 답답한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을 수없이 목격한 선거가 또 경제를 덮는 게 야속하다.
집권세력의 움직임엔 아직 감흥이 없다. 한국 경제를 위한 무대를 중동 등에서 넓힌 대통령의 성과는 엄연하지만 성찰은 뒤늦었고, 깊게 생각하고 이치를 따질 독립적인 사색의 공간을 여당에 줄 배포가 있는지 의문이다. 정권 비판과 대안 제시의 절묘한 균형을 맞춘 적 없는 야권도 민의를 감당할 능력을 증명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옳다는 ‘집단사고’의 늪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많이 발을 빼려는 쪽이 웃는다. ‘괴짜 천재’ 일론 머스크는 “삶의 목표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일 수는 없다. 우리의 인생에는 영감을 주는 일, 아침에 눈을 뜨고 싶은 이유가 되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넓고 크게 볼 줄 아는 이들을 뽑아 일을 시킬 수 있는 판이 깔려야 한다. 굳이 ‘떨겨층’을 만들어 떼어내지 않아도 되는, 자양분이 충분한 상록의 잎새가 필요하다. 초록과 함께 선거 플래카드가 내걸릴 내년 봄은 상승과 하강이 선명하게 중첩돼 조금 더 특별할 것이다. 진정한 강자는 말없이 깊게 뿌리 박고 있는, 표를 가진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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