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금개혁의 핵심인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의 구체적인 숫자를 뺀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놨다.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이라는 방향성만 제시하고 “국회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며 공을 다시 국회로 떠넘겼다. 합당한 근거에 바탕한 수치가 담긴 한, 두 가지 구체적인 안을 놓고 의견을 좁혀야 할 마당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여론 눈치만 보고 정부와 국회가 서로 미루는 사이 개혁의 골든타임이 흘러가고 있다.
‘맹탕 개혁안’은 정부 자문기구인 재정계산위원회가 지난달 18가지 안을 담은 백화점식 나열안을 내놨을 때부터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단일안을 내놔야 할 전문가들이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와 받는 시기에 따라 가능한 조합을 모두 제시해놓고 고르라고 내민 것이다. 위원회 내부에서도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 정부는 한 술 더 떠 비판적인 여론이 제기된 소득대체율을 포함한 시나리오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정부 안이 24가지로 불어난 것이다. 정부의 개혁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6월 “(국회에) 복수안을 내면 정부 부담이 줄지만 반대로 국민에게 선택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했던 것과도 배치된다.
정부가 제시한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안도 논란이 예상된다. 보험료율을 올리되 앞으로 보험료를 내는 기간이 적은 중장년층은 단기간에 올리고 가입기간이 긴 청년층은 장기간 올려 인상 부담을 덜겠다는 것이나 중장년층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세대 간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기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 과정에서 구체화될 것”이라며 또 발을 뺐다.
문제는 총선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가뜩이나 민감한 사안에 국회가 나서겠냐는 것이다. 지난 3월 국회 연금특위 역시 소득대체율과 재정 상태 유지를 놓고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정부가 제시해야 한다며 공을 떠넘겼다. 이런 식의 핑퐁게임으로는 개혁안 도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2055년이면 국민연금이 고갈돼 미래세대가 돈을 내고도 못 받게 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려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연금구조를 바꿔야 하지만 아직 국민 공감과 설득이 더 필요하다. 연금개혁에 찬반이 각각 48%, 45%로 엇비슷하다. 가계 부담이 늘어나는 일에 모두를 만족시킬 묘수가 나오기 어렵다.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인상 수준에서 빨리 적용하는 게 그나마 부담을 덜 수 있는 길이다. 정부와 국회가 서둘러야 그나마 고갈시점을 늦출 수 있다. 이전 정부가 국회에 사지선다형을 제출해 무산된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