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됐다. 국가 재난안전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을 드러낸 참사 이후 당장 잘못된 것을 뜯어고칠 것처럼 보였지만 비극은 반복됐다. 두 달 후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에 이어 여름엔 오송 지하도 홍수 참사가 이어졌다. 모두 안전을 책임지는 누군가 한 명이라도 제대로 현장을 살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들이다. 사고가 나면 그때 상황만 모면하려고만 하는 안이함과 무책임이 또 다른 재난을 불러오는 것이다.
핼러윈데이가 가까워오자 안전 점검에 나선다고 부산스러운 모습이다. 서울시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건대입구 골목길에서 인파 쏠림을 가정한 훈련을 실시하고, 몇몇 지자체는 CCTV로 군중밀집도를 계산해 혼잡도를 알려주는 AI 시스템을 설치하기도 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장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정작 이태원 참사처럼 안전사각지대에 놓인 주최자 없는 행사의 경우 명확한 안전관리 매뉴얼조차 없는 상태다. 경찰이 외부 자문을 거쳐 인파 안전관리 매뉴얼 초안을 마련했지만 일선에는 배포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매뉴얼 개정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 재난안전관리법 개정안이 잠자고 있는 탓이다.
국회에는 지난해 11월 주최·주관이 없는 행사에 지방자치단체장이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개정안이 제출됐다. 하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않다가 지난달 말에야 겨우 상임위를 넘겼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법안이 46개나 제출됐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건 단 1건뿐이다. 여야가 정쟁에 몰두해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사고를 키운 건축물 불법 설치나 안전규정 위반 건축물 시정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 불법 건축물이 최근 3년간 20만건에 달한다.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국가 안전 시스템 개편속도도 더디긴 마찬가지다. 올 초 정부는 97건의 ‘국가 안전 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이행률은 5분의 1 수준이다.
이태원 참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데에 있다. 인파 몰림뿐 아니라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곳들을 평소 철저하게 점검하고 관리해야 마땅하다. 재난 긴급 상황에선 변수가 많아 매뉴얼이 있다고 해도 제대로 이행하기 어려운 만큼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 대응책을 철저하게 숙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시민 스스로 안전수칙을 지켜야 함은 물론이다.
참사의 아픔이 시간이 지난다고 옅어지는 건 아니다. 유가족과 시민이 29일 그날을 다시 돌아보는 추모대회를 한다고 한다. 상처를 보듬고 위로하는 것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정치적 셈법 이전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