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본의 유력지인 마이니치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는 일한협력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5년 임기를 마치면 대부분 살해되거나 체포돼 한일 교류가 어렵다. 이웃 나라(일본) 입장에선 이래서야 어떻게 사귈 수 있겠는가”라며 당혹스러운 속내를 내비쳤다.
그는 일본 보수정계의 실력자인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해 윤 대통령과 만나 한일관계를 유례없이 호전시키는 데에 ‘키맨’ 역할을 한 인물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관련 분야를 전공했고 일본 언론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필자로서는 아소 부총재 발언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보통 일본 사람은 자기 의사를 에둘러 표현하는데 이번 아소의 발언은 너무 직설적이었으며 그 강도 역시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일본이 윤석열 정권과 거리두기에 나설 수도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 아닌가’라고 해석될 수도 있는 소지가 엿보이기도 했다.
현 정부는 국내 보수세력은 물론이고 해외 우방국으로부터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을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탄탄한 지지를 받아야만 동맹외교에서도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요즘 미일 정상들은 국내 정치 현안 때문에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의 기시다 총리도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미일 3국 정상 공히 민심의 이반에 직면해 있다.
만약 내년에 미국과 일본 지도자들이 교체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면 그동안 우리 정부가 공들인 ‘3국 간 공조’는 궤도 수정이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 ‘플랜B’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국제정세가 요동을 치고 있다. 우리에게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 금융계의 황제’로 불리는 세계 최대 민간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세계는 최근 수십년 동안 가장 위험한 시기에 놓여 있다”면서 전쟁 확산 가능성을 경고하며 경각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 사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패권경쟁 등이 불안요인으로 지적된다.
여기에는 그동안 G7 서방 선진국과 공조하에 전개된 미국 중심의 일극주의(一極主義)가 쇠퇴하면서 국제질서의 다극화 전개가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변화 과정에 블록화와 보호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 채우기 시작했다.
이는 자유무역 질서 체제하에서 성장을 구가해온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환경 변화이자 심각한 위기요소라고 할 수 있다.
지역 간 블록화는 해외 경제영토의 축소를 강요할 것이며, 보호주의는 높아진 시장 진입장벽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와 밀접한 연관돼 지금껏 성장을 구가해온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국제사회에서 주도권을 쥐고 행사할 영역과 수단이 매우 협소하고 제한적인 게 현실이다.
윤 대통령은 이 복잡다기한 현안을 마주하면서 여당과 보수세력의 힘만으로 이를 돌파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40%에도 못 미치는 득표율을 얻었다는 점은 대통령의 인식 전환 필요성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사례다.
이제 대통령은 정파를 초월한 입장에 서서 야당에도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내 정치 현안을 둘러싸고는 서로 치열하게 대립하더라도 외교안보 영역에 대해선 야당 측에 일정 부분의 역할을 부여하는 ‘초당적 외교’로의 국정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해외 경제영토를 개척할 때도 야당의 힘을 빌려야 한다. 야당 인사에게 대통령특사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점도 검토해볼 만하다.
한편 야당도 이에 호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야당이 담당해야 할 부분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설 수 없는 지역이나 국가가 되면 좋을 듯하다. 중국, 러시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저개발국이나 후진국, 제3세계 등의 통칭), 중남미 지역 등을 손꼽을 수 있다.
만약 야당이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복원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것 또한 유의미한 일이 될 수 있다.
야당을 외교의 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통령의 과감한 태도 전환과 담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야당과의 외교 공조는 지지율 40% 선에 묶여 있는 대통령 지지 기반을 넓혀주는 동시에 정권 취약성에 대한 미일 동맹·우방국들의 우려를 불식시켜주는 묘책이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특정 세력이나 정파만을 위한 대표가 아니라 온 국민의 대통령임을 상기하고 국민 누구에게나 도움을 요청할 ‘특권’을 이 기회에 잘 활용하기를 기대한다.
장준영 헤럴드 고문(전 한국항공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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