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상인 “외국인 없으면 장사 못해”
“외국인관광객으로 매출 메우는 실정”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의 한 분식점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식사하고 있다. 전새날 기자 |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이제 외국인 없으면 장사 못해요. 예전에는 김하고 명란젓만 사갔는데 요새는 간장게장·낙지젓갈까지 다양하게 찾습니다. 맛있다고 게껍데기까지 씹어먹는 손님도 있어요.”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50여년간안 반찬가게를 운영 중인 추귀순(77) 씨는 최근 시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음을 체감한다고 했다. 10여분간 가게에는 양념게장, 새우장, 깻잎절임, 멸치볶음 등이 담긴 반찬통을 흥미롭게 쳐다보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벽면에는 ‘진공 포장을 통해 해외로도 택배 배송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영어·중국어·일본어로 번역돼 붙어 있었다. 가게 안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손에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간장게장을 먹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추씨는 “이제는 다 온라인으로 주문해 먹고 밥도 잘 안 먹다 보니 반찬가게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계속 찾아주는 단골과 외국인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입구에 위치한 한 꽈배기가게 앞에 외국인 관광객이 줄을 서 있다. 전새날 기자 |
18일 오후 5시께 방문한 광장시장은 수많은 외국인으로 붐비고 있었다. 시장 입구의 꽈배기가게 앞은 안내푯말을 따라 긴 줄이 늘어섰다. 시장 곳곳에서는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가 들렸다. 손에 호떡, 닭강정, 탕후루 등 음식을 들고 먹으며 돌아다니는 외국인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외국인은 일행에게 “어메이징 플레이스(amazing place)”를 연신 외치며 들뜬 모습을 보였다.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20여명의 중국인 단체관광객부터 히잡을 쓴 외국인도 있었다.
고물가에 국내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광장시장 등 전통시장은 돈을 쓰기 위해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으로 가득 찼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의 한 칼국수가게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식사를 하고 있다. 넷플릭스 ‘길 위의 셰프들’에 나온 이 칼국수가게의 손님은 90%가 외국인이었다. 전새날 기자 |
시장 상인들은 외국인 방문객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입을 모았다. 한 만둣집 점주는 “한국 사람 같아 보여도 말하면 다 외국인이다. 100명이 오면 그중 70명은 외국인”이라며 “광장시장에 외국인이 없으면 큰일난다”고 강조했다. 함께 만두를 빚던 또 다른 상인도 “덤플링(Dumpling)’ 그러면서 만두를 달라고 한다”며 “(넷플릭스) 방송에 출연한 집은 미국에서 인터넷 보고 와서 줄 서 먹는데 손님의 90%가 외국인”이라고 했다.
한 빈대떡집 점주는 “코로나 때와 비교하면 외국인 관광객이 60%는 늘어난 것 같다”며 “아침에 시장에 와서 보면 외국인이 말도 못하게 많다”고 했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의 한 칼국숫집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식사를 하고 있다. 전새날 기자 |
실제로 1시간 가까이 시장 안을 둘러봤을 때 외국인 비중이 많아진 것이 체감됐다. 외국인 관광객은 떡볶이, 빈대떡, 간장게장 등 다양한 한국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카스맥주와 장수막걸리 등 국내 주류를 마시기도 했다. 시장 내 상점에는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으로 번역된 메뉴판이 함께 붙어 있는 곳이 많았다.
미국에서 왔다는 네리(30) 씨는 “넷플릭스에서 칼국숫집을 보고 꼭 와보고 싶었는데 처음 왔을 때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며 “다행히 여행기간이 5일이라 다시 왔는데 가게 주인이 너무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어서 정말 만족한다”고 했다.
18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전새날 기자 |
일본에서 왔다는 유이(23) 씨는 “떡볶이, 꽈배기, 닭강정 같은 한식을 좋아해 다 사먹었다”며 “광장시장은 음식 말고도 구경할 게 많아서 재미있었다. 다음에 또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친구와 함께 캐나다에서 여행 온 댄(33) 씨는 “방금 호떡을 처음 먹어봤다”며 “가격이 1달러 정도로 저렴한데도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다시 줄 서서 먹고 싶다”며 빈 종이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시장 내 김치가게 앞에서는 한 외국인 부부가 “노르웨이까지 가야 하는데 터지지 않게 잘 포장해 달라”며 “(김치를) 먹어보고 맛있어서 다시 길을 돌아왔다”고 했다. 상인도 웃으며 “스위스·독일·홍콩으로 가는 손님도 사 갔다”고 설명했다.
9일 서울 시내 한 피자가게 메뉴판(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 |
고물가에 국내 소비는 위축되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8월 외식 소비를 포함하는 음식점 포함 소매판매액지수(불변지수)는 5.1% 감소했다. 2021년 1월 7.5% 감소한 이후 2년7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다.
얼어붙은 내국인 소비는 외국인이 채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늘어난 외국인 관광객 수가 한몫하고 있어서다. 한국관광공사 방한 외래관광객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약 443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7% 증가했다. 여행 성수기인 7~8월에는 각각 10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방문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만 약 665만명에 달한다.
실제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9월 광장시장이 있는 서울 종로구 식음료업 신용카드 소비액 추이에서 외국인은 전년 동기 대비 149% 증가한 반면 내국인은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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