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노조가 조합원 직계가족 및 정년퇴직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일명 ‘고용 세습’ 사수에 나서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기아 노조는 지난 10일 2023년도 임금단체협상 14차 교섭이 결렬되자 12~13일, 17~19일 각각 총 8시간, 20일엔 총 12시간 파업을 예고했다. 노조가 파업에 들어갈 경우 지난 2년 연속 무분규 타결 기록이 깨지게 되는 상황이었는데 파업을 유보하고 12일 경기 오토랜드 공장에서 15차 본교섭을 진행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협상의 쟁점은 단협 27조1항의 삭제 여부다. 사실상 ‘고용 세습’을 골자로 하는 해당 조항에 대해 사측은 수년째 삭제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해당 조항에 대한 삭제 요구를 ‘개악안’으로 판단하고 맞서는 형국이다. 해당 조항에는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 근속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고 규정돼 있다. 사측은 이 조항을 개정하는 대신 올해 말까지 신입사원 채용 절차를 진행해 직원들의 노동 강도를 줄여주고, 직원 자녀 1000명에게 해외 봉사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기아 주니어 글로벌 봉사단’ 운영도 제안했으나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아울러 노조는 주 4일제 도입과 정년연장 즉각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는 대기업 노조가 고용마저 세습하겠다는 것은 ‘현대판 음서제’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다. 앞서 사법부는 ‘단체협약을 통해 일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다수의 취업희망자를 좌절하게 하는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노동부도 지난 2월 이 조항이 균등한 취업 기회를 보장한 헌법과 고용정책기본법 위반이라며 단협에 이 조항을 명문화한 사업장 60곳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관련 조항을 뒀던 60곳 중 54곳이 개선을 완료했다. 기아차 노조의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가 지난 1월 개별 사업장에서 이 조항을 수정하기로 결정할 정도로 사회적 공감이 컸다. 법률적 판단을 떠나 고용 세습 논란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며 공정한 경쟁 없이 ‘부모 찬스’로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허술한 사회라면 국가 기강이 바로 설 수 없다.
고용 세습이 억지라는 것은 기아 노조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64세 정년연장’을 얻어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년연장은 고령화 가속화와 국민연금 고갈에 따른 대안으로 사회적 공감을 얻어 추진할 일이다. 직무성과급제 도입 등 임금 체계 개편이 전제돼야 진척이 가능하다. 고용 세습이라는 불공정 특혜와 맞바꿀 사안이 아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겠다는 집단이기주의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