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10일 24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올해 국감은 작년보다 8곳 증가한 791개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다음달 8일까지 진행된다. 국감은 행정부의 예산 집행 적절성과 정책 수행 효율성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입법부 대표적 역할 중 하나다. 그러나 800개 가까운 피감기관의 예산과 정책을 20여일 만에 감사하려면 국회의 역량을 총동원해도 버거운 일이다. 주마간산 식의 감사에 보여주기식 ‘깜짝 쇼’, 피감기관을 향한 야당 의원들의 호통과 여당 의원들의 일방적 감싸기가 해마다 되풀이되면서 맹탕·부실국감의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다.
올해 국감은 나아지기를 기대하지만 전망은 극히 어둡다. 내년 4월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진행되는 국감이다 보니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정국 주도권 다툼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야당은 윤석열 정권 심판을, 여당은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집중 부각해 총력을 쏟을 태세여서 국감장이 정쟁의 연장선이 될 공산이 크다. 야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야당 탄압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 서울~양평 고속도로 설계 변경 김건희 여사 일가 연루 의혹 등을 공세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여당은 이재명 방탄을 노린 입법 폭주에 따른 국정 마비,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고용 통계조작, 탈원전 정책이 낳은 한국전력 부실화 등을 집중 타격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합리적 대안이라는 본래 취지는 가려지고 국감이 총선 전초전으로 변색되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신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에 노출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국면에서 경제위기 극복에 매진해야 할 기업인들이 국회에서 장시간 발목이 잡히는 일도 우려된다. 올해는 국감장 기업인 증인이 100명에 육박하면서 ‘기업인 길들이기’가 더 극심해질 판이다. 지난해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총책임자(GIO)가 당한 것처럼 ‘9시간 대기 3분 발언’의 폐해가 반복돼선 안 될 일이다. 증거수집과 대책 마련이라는 증인 채택의 본래 취지에 맞게 실무 책임자 또는 전문가에 국한해 진행하는 게 합리적이다. 기업총수를 불러내 혼내야 문제해결이 빠르다는 그릇된 국회 권위주의와 보여주기식 구태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정치는 치열하게 대립하더라도 결국은 화합을 끌어내는 예술이다. 그런데 21대 국회는 지난 3년반 동안 자신들의 진영과 지지층만을 염두에 두었을 뿐 민생을 위한 협치를 보여준 기억이 없다. 극단적 세력이 득세할 때 합리적 사고는 길을 잃는다. 21대 국회를 마감하는 국감에서도 최악의 정쟁이 반복된다면 국감 무용론은 물론 정치 무용론이 제기될 것이고 내년 총선에서 국민적 심판이 따를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