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이 5일 자동차 세계 1위인 일본 도요타와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을 했다는 낭보를 전해왔다. 도요타가 2025년부터 미국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탑재될 배터리를 10년간 공급하는 계약이다. 연간 기준 전기차 25만대에 달하는 20GWh(기가와트시) 규모로, 완성차기업과의 합작 공장(JV)을 제외한 LG엔솔 단일 수주로는 최대인 약 30조원어치로 추정된다. 앞서 세계 자동차 판매 2위 폴크스바겐부터 르노닛산, 현대차그룹, GM을 고객사로 확보한 LG엔솔은 이번 수주로 글로벌 상위 5개 완성차 브랜드와 모두 협력관계를 구축하게 됐다.
일본은 자국 기술이 최고라는 자존심이 강하다. 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 도요타는 “돌다리를 두드리다가 무너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중한 기업이다. 그런 도요타가 파나소닉 등 일본 배터리기업이 아닌 LG엔솔을 선택한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배터리기술력과 탄탄한 산업생태계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30년 전부터 이차전지를 미래 성장엔진으로 점찍은 LG엔솔은 해마다 수백억원씩 쌓이던 사업 적자 규모가 2005년 2000억원까지 커졌지만 고(故) 구본무 당시 LG 회장은 “이건 우리 미래를 위한 사업”이라며 밀어붙였다. LG엔솔은 마침내 2009년 GM과 공급계약을 하면서 북미 시장을 뚫을 수 있었다. LG엔솔은 지금 2만9000여건의 배터리 관련 특허와 연 200GWh 생산능력을 갖춘 배터리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났다. 한 기업인의 혜안과 혁신적 발상, 흔들림 없는 투자가 세계가 인정하는 K-배터리 기술력을 만들어냈다.
이번 도요타와의 협력은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환경에 대응하는 의미도 크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미국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하면 셀 kWh당 35달러, 모듈까지 생산하면 45달러를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도요타와의 공급계약으로 확보한 물량만 소화해도 LG엔솔은 연간 9억달러(약 1조2000억원)의 보조금(세액공제) 수혜가 기대된다. 미국에 2개 단독 공장과 6개 합작 공장을 운영 중인 LG엔솔은 도요타 전용 생산라인 구축으로 북미 생산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LG엔솔의 이번 성과로 국내 배터리 3사의 수주 잔고가 1000조원을 돌파하는 금자탑을 쌓았다. 한국 산업에서 1000조원 수주 잔고 상품은 기념비적인 일이다. 여느 산업과 달리 추격자 아닌 기술혁신 선도자로 나선 덕분이다. 그러나 명실상부 ‘배터리 최강국’으로 가려면 중국과의 한판승부가 불가피하다.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 선점을 향한 지속적인 혁신만이 승리의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