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소비 트렌드로 ‘드래곤 아이즈’ 제시
“‘분초사회’가 내년 모든 키워드 관통할 것”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트렌드 코리아 2024’ 미디어데이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미래의창 제공] |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이제 기업들은 시간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 사이트·쇼핑몰에 (고객이) 좀 더 머물게 해야 된다. 백화점과 쇼핑몰이 점점 화려해지고 컬리가 게임을 만드는 이유다. 시도 때도 없이 쿠폰을 뿌려서 더 자주 들어오고 1분이라도 더 있게 만들려는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5일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트렌드 코리아 2024’ 미디어데이’에서 내년 소비 트렌드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시간’을 꼽고 이같이 말했다.
이날 행사는 김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4’ 출간을 기념해 열렸다.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장을 맡고 있는 그는 매년 다음해 소비 트렌드를 키워드로 정리한 책 ‘트렌드 코리아’를 출간하고 있다. 2008년 시작한 작업이 올해로 16년째를 맞았다.
‘트렌드 코리아 2024’ 표지 [미래의창 제공] |
김 교수는 내년 소비 트렌드 키워드를 ‘드래곤 아이즈(DRAGON EYES·용의 눈)’이라는 단어로 제시했다. 10개의 트렌드 키워드의 앞글자를 딴 단어다. 2024년이 ‘청룡의 해’라는 점과, 인공지능(AI) 시대에도 결국은 인간이 중요하다는 철학이 담겼다.
그는 “인공지능은 효율과 속도의 문제다. 민첩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만 완성도는 아직 사람이 손을 봐줘야 되는 단계”라고 했다. 이어 “아무리 용을 잘 만들어도 마지막 눈에 점을 찍기 전까지는 진짜 용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룡점정의 뜻을 담은 드래곤 아이즈로 키워드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김난도 교수가 제시한 키워드 10개는 ▷분초사회(Don't Waste a Single Second: Time-Efficient Society) ▷호모 프롬프트(Rise of ‘Homo Promptus’) ▷육각형 인간(Aspiring to Be a Hexagonal Human) ▷버라이어티 가격 전략(Getting the Price Right: Variable Pricing) ▷도파밍(On Dopamine Farming) ▷요즘남편 없던아빠(Not Like Old Daddies, Millennial Hubbies) ▷스핀오프 프로젝트(Expanding Your Horizons: Spin-off Projects) ▷디토소비(You Choose, I'll Follow: Ditto Consumption) ▷리퀴드폴리탄(ElastiCity. Liquidpolitan) ▷돌봄경제(Supporting One Another: ‘Care-based Economy’)다.
이 중에서도 김 교수는 모든 키워드를 아우르는 핵심 키워드로 분초사회를 꼽았다. 한마디로 시간에 대한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시간을 금같이 귀하고 정확하고 잘게 나눠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라며 “소유경제에서 경험경제로 이행되고 있다. 지금은 시간과 돈이 대등하게 중요하거나 어떨 때에는 시간이 더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간 단위도 아주 작아지고 있다. 옛날엔 사람마다 차고 다니는 시계의 시간이 달랐는데, 지금은 핸드폰을 꺼내 1초도 틀리지 않는 정시를 확인한다. 단위가 조밀해지면 귀하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업을 경영하거나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고객의 지갑을 놓고 쟁탈전을 벌였으면, 이제는 시간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컬리가 7월 선보인 게임 ‘마이컬리팜’ 화면 [컬리 애플리케이션 캡쳐] |
호모 프롬프트는 인공지능에게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한 인간의 질문을 뜻한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에서 초점을 맞추는 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고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탁월한 성과를 내냐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의 역량으로 ‘판단’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은 결과물을 잘 던지지만 스스로 좋은 결과인지 나쁜 결과인지 판단하는 역량이 없다. 결국 인공지능을 이기는 인간만의 역량은 스스로를 볼 줄 아는 능력”이라고 했다. 이어 “요새는 컴퓨터가 없어서 못 쓰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아날로그에 투자해 인간적 역량을 갖게 되면서 이제는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가 아니라 ‘아날로그 디바이드’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육각형 인간은 외모나 학력 등 모든 면에서 빠짐없는 사람을 말한다. 김 교수는 “요새는 개천에서 용이 나거나 고진감래를 선호하지 않는다”며 “사회계층 사다리가 무너지면서 미래에 투자하고 매진하는 성장 서사가 와닿지 않게 됐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이 발달하면서 사회적 비교가 쉬워진 영향”이라고 짚었다.
그 밖에 버라이어티 가격전략은 유통채널, 특히 e-커머스(전자상거래) 활성화로 가격이 플랫폼이나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인 현상을, 도파민과 파밍을 섞은 키워드인 도파밍은 기괴하기까지 할 정도의 자극적 재미를 추구하는 경향을 뜻한다.
요즘남편 없던아빠는 가사 역할분담이나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3040세대 아빠를, 스핀오프 프로젝트는 새로운 사업을 과감히 시도하는 기업이나 진지하게 부업을 찾는 개인을 지칭한다. ‘나도’라는 뜻의 영어 디토 소비는 인플루언서나 콘텐츠·유통 플랫폼에 의존해 소비하는 것을, 리퀴드폴리탄이란 광역교통 등의 발달로 서울 등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돌봄을 연민이 아닌 경제의 문제라고 정의하며 돌봄의 시스템화가 중요해졌다고 역설했다.
kimsta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