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10년물)금리 급등 후폭풍으로 원화가치와 주가가 급락하는 등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친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동안 잠잠하던 물가마저 고개를 쳐들면서 한국 경제를 흔들고 있다. 5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3.7% 올랐다. 8월(3.4%)에 이어 두 달 연속 3%대 오름세로, 지난 4월(3.7%)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글로벌 유가가 강세를 보인 데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일부 농산물 가격도 고공행진을 이어간 영향이 컸다.
물가상승률은 작년 7월(6.3%)을 정점으로 올해 7월 2.3%까지 내려갔다가 이후 석유류 가격의 낙폭이 작아지면서 오름폭을 키우고 있다. 유가나 농수산물은 국제 경기나 계절에 따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기에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유가나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물가지수가 3.8% 올라 총지수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4.4%나 뛰었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 어둡다. 추석 연휴 이후로 미뤘던 식품 가격, 공공요금 등이 줄줄이 반영돼 생활물가 부담은 더 커지게 된다. 지난 1일부터 우윳값이 3∼13% 올라 빵·과자·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7일부터 수도권 지하철 기본요금이 150원 올라 1400원이 되는 등 대중교통도 2차로 오른다. 국제유가가 뛰면서 경유는 9개월 만에 ℓ당 1700원을 돌파했고 휘발유는 1800원대에 가까워졌다. 4분기 전기요금 인상도 거론된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실감난다. 고물가 탓에 지난 7월까지 실질임금은 5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의 물가는 이미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4일 국가·도시별 물가를 비교하는 넘베오에 따르면 서울의 식료품 물가는 일본 도쿄보다 평균 34%가량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우윳값은 미국 뉴욕보다 비싸다. 문제는 한 번 오른 식음료 가격이나 서비스 요금은 다시 내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970년부터 지금까지 56개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111건을 분석했더니 64건(57.6%)만 5년 안에 잡혔다는 것이다. 고물가에 대응하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한국은 엄청난 가계부채와 경기침체 우려에 선뜻 나서기도 어렵다.
고물가는 서민의 실질소득을 감소시키고 민간 소비와 기업투자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다. 물가상승이 경기침체와 맞물리면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정부는 인플레 장기화에 대비해 통화·재정 정책의 면밀한 조합을 구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