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의 원조 격인 영국이 200년 넘게 유지해온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각) 영국 더타임스는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단계적 상속세 폐지방안을 마련해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르면 내년 말 실시될 예정인 총선을 앞두고 상속세 폐지 여론이 높아진 데 따른 조치다. 소득세 등을 이미 장기간 내가며 축적한 자산을 자녀에게 물려줄 때 상속세란 형태로 다시 세금을 부과하는 이중 과세의 부당성에 많은 국민이 수긍하고 있는 것이다. 상속세가 가업승계를 가로막고 투자·고용을 줄이는 부작용이 크다는 점도 작용했다.
20세기 들어 귀족 등 극소수의 부자를 대상으로 각국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상속세는 자산가치가 상승하며 부유층이 아닌 중산층까지 큰 영향을 주는 세금이 됐다. 1796년 상속세를 도입한 영국은 32만5000파운드(약 5억4000만원) 초과 유산에 40%의 단일 세율을 적용한다. 수낵 총리는 지난달 보수당 행사에서 “국민의 (성공에 대한) 열망을 지지하기 위해 상속세 문제에 손을 대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연유로 선진국 반열의 많은 국가가 이미 오래전에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세 부담을 경감하는 대책을 내놨다. 캐나다(1071년)에 이어 호주(1979년), 스웨덴(2005년), 노르웨이(2014년) 등 OECD 10개국은 상속세를 폐지했다. 반면 한국은 수십년간 요지부동이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로, 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지만 최대주주에 붙는 할증(세금의 20%)까지 합치면 세율이 최고 60%로 사실상 세계 1위다. OECD 평균은 15%로, 한국보다 한참 낮다.
한국의 징벌적 상속세는 해외토픽감이 되기도 했다. 2020년 10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망 당시 외신들은 “삼성가(家)가 12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막대한 상속세를 내게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넥슨그룹 창업주 김정주 회장 사망으로 당장의 막대한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는 유족이 넥슨 지주회사(NXC) 주식으로 현물납세하자 정부가 NXC의 2대주주가 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현재의 상속세율 아래서는 경영승계가 2대만 계속돼도 넥슨의 경영권은 결국 정부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마당이라면 피땀 흘려 기업을 일굴 동기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한미약품과 한샘, 락앤락 등이 상속세 부담으로 회사를 해외 사모펀드에 넘겼다. 창업강국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징벌적 상속세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자본이득과세로의 전환이든, 유산취득세로의 개편이든 전향적 논의를 펼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