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쇄신을 요구하며 지난달 31일부터 단식을 이어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단식을 중단했다. 26일 구속 여부를 가릴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대비하고 체포동의안 가결에 따른 당내 극심한 혼란을 방치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단식은 직선제를 요구하며 23일 동안 단식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기간을 하루 넘어선 최장 기록이지만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과 맞물려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한 결과가 됐다.
거대 야당 대표의 단식은 무게감이 상당하지만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는 이 대표의 단식 이유는 국민이 납득하기에 거리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출구도 보이지 않은 단식이 막판에 체포동의안 부결 호소로 이어지면서 민심이 요동쳤고, 체포동의안 가결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방탄 단식’임을 스스로 자인한 셈이 되면서 단식의 명분도 퇴색했다.
문제는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을 파기한 당사자인 이 대표가 책임져야 할 사안임에도 민주당 분위기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데 있다. 민주당은 체포동의안 가결 의원을 찾아내 좌표를 찍고 ‘배신자 색출’을 노골화하고 있다. 가결했다는 의원이 투표용지를 인증하는 일까지 벌어져 우려스러운 수준을 넘어선 상황이다. 당이 방침을 정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 의사에 맡긴 것에 배치되는, 민주주의 정당으로 보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일이다.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벌어지는 일들은 더 우려스럽다. 민주당 지도부는 소속 의원 168명 전원에게 구속영장 기각을 요구하는 탄원서 제출을 요구하고, 일부 의원은 SNS 100만명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집단탄원서 공세로 영장판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다. ‘김의겸발’ 가짜 뉴스도 등장했다. 김 의원은 “검찰이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영장전담) 판사를 선택했다”며 “그 판사가 하필이면 한동훈 장관의 서울대 법대 92학번 동기”라고 했다. 그러나 동기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는 게 밝혀졌는데도 사과 한 마디 없이 ‘아니면 말고’식으로 대응했다. 이런 낯뜨거운 일들이 반복되는 것은 국민 반감만 살 뿐이다.
영장심사는 형사사건에서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받는 과정이다. 제1야당 대표가 영장심사를 받는 게 초유의 일이지만 담담히 관련 혐의에 대해 소명하면 될 일이다. 이 대표의 구속 여부가 이 대표 개인은 물론 민주당의 앞날에 기로가 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더라도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도 이젠 이 대표 리스크는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고 정당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친명·비명으로 나눠 이전투구하는 소모적 시간을 끝내고 멈춘 국회를 정상화해 민생을 돌보는 데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