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연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은 듯하다. 직원 가족과 퇴직자 등 내부 관계자들에게 일자리나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 거의 일상이 됐다. 각종 성과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과다한 성과급을 타내는 일도 많았다. 업무시간에 골프를 치는 등 근무 규정을 어긴 경우도 허다했다. 일반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례들이다. 감사원이 정부 출연기관에 대한 경영관리 실태 감사 결과가 그렇다. 감시 사각지대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흥청망청 ‘세금 파티’를 벌인 것이다.
감사원이 적시한 세금 빼먹기 백태를 보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산업인력공단은 국가기술자격시험을 관리 감독하는 시험위원에 직원 가족을 우선 위촉했다. 일당은 24만원으로, 웬만한 대기업 수준이다. 이런 식으로 2018년부터 4년간 373명이 40억원을 받아갔다고 한다. 직원 가족 한 사람이 1000만원 이상 혜택을 받은 셈이다. 14세 아들에게 시험관리보조를 했다며 13만원을 지급한 사례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채점도 안 된 답안지를 파쇄하는 황당한 사고가 생기는 것이다. 1만원도 안 되는 시급에 종일 고된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가 수두룩하다. 그런데 공공기관이 고액의 ‘꿀알바’를 고정적으로 특정인들에게 제공하고 있었으니 국민적 공분이 치솟을 만하다.
이뿐이 아니다. 한국환경공단은 퇴직자들이 설립한 민간회사와 위탁계약을 하면서 인건비를 과다 지급하는 방식으로 71억원의 세금을 지출했다. 한국교육평가원 등 정부 산하 연구기관들은 사실상 성과를 조작해 성과급을 받아갔다. 예산 편성 때 예상 수입을 일부러 적게 잡아놓고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는 수법을 주로 썼다고 한다. 재택근무지나 출장지를 이탈해 골프장 가기, 무자격 업체에 컨설팅 밀어주기 등 그 사례는 일일이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이번 감사 결과는 155개 출연기관 가운데 현장감사가 진행된 18개 기관에 한정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직접 감사를 해보면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공공기관이 ‘신의 직장’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경영이 아무리 방만해도 관리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적발된 공공기관에 대한 성과급 회수 등 엄중한 문책은 필수다. 이와는 별개로 정부 출연기관을 지원하는 감시 시스템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 출연금은 2017년 29조원에서 2021년 43조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이를 관리하는 규정은 사실상 없다는 게 감사원 지적이다. 국민세금을 쓰면서 관리할 제도적 장치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건 정부의 직무유기다. 출연기관 구조조정과 전면 재정비도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