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 게임’이라는 책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재미있는 사례가 나온다. 각 회사에서 진행한 교육 콘퍼런스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떻게 애플을 이길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그에 반해 애플은 교사들이 더 잘 가르치고 학생들이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애플이 하는 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한 회사는 경쟁자를 물리치는 일에, 다른 한 회사는 이상실현에 목적을 둔 것이다.
저자 사이먼 사이넥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방식을 ‘유한게임’, 애플의 방식을 ‘무한게임’이라고 한다. 유한게임은 눈앞의 결과에 집착한다. 단기적인 수익과 경쟁에서 이기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 유한게임에 빠진 마이크로소프트의 목표는 애플을 이기는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아이팟’을 겨냥한 MP3 플레이어를 만들었고, 애플은 스마트폰의 개념을 완전히 바꾼 ‘아이폰’을 출시한다. 이후 펼쳐진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달리 애플의 목표는 자신을 이기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정치 풍토는 완전한 유한게임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 정치는 선거승리, 권력장악을 목표로 한다. 권력을 얻고 그 기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한 단기 목표에 집중한다. 어떻게든 상대를 거꾸러트리면 되는 게임이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갈지자로 걷고 뒤로 돌아가도 상관없는 노릇이 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이는 내가 잘하지 않아도 상대가 못하면 어부지리로 권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잘못을 찾고 책임을 상대에게 덧씌우는 데에 급급해한다. 내가 잘한 것보다는 상대가 잘못한 점을 찾는 데에 치중한다. 나라를 어떻게 이끌겠다, 만들겠다는 비전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극단의 정치에서 중도는 자리할 수 없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보면 ‘인피니트 게임’에서는 모든 플레이는 대의명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대의명분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무언가를 지향해야 하고 포용적이어야 한다. 봉사정신이 있어야 하고 회복탄력적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상적이어야 한다. 우리 정치에 대의명분이 있을까?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랬다면 더 나은 방향을 놓고 방법론을 끊임없이 토론하고 조율하고 승복하며 나아갔을 것이다. 한때는 우리 정치도 대의명분을 가지고 부끄러워하거나 물러설 줄도 알고, 분노할 줄 알고 그랬다. 최소한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되면 유권자인 국민에게 형식적이라도 사과는 했다. 그래서 지금도 국민이 기억하고 아끼는 몇몇 정치인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 아닐까.
정치인들은 스스로 게임의 끝을 맺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그 힘은 국민에게 달려 있다. 설사 일부 국민도 정치권에 편승해 가짜 뉴스를 동원하면서까지 서로 편을 나눠 싸우는 모습을 보인다 해도 어쨌든 정치인을 바꿀 세력은 국민밖에 없다.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은 더 긴박하고 추하게 싸울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은 그들에게 묻고 들어야 한다. ‘앞으로 나는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든지, ‘어떤 나라를 꿈꾼다’든지 비전과 소신을 밝히는 그런 정치인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편 가르기 하고 분열을 일삼는 정치인은 국민이 직접 퇴출해야 한다. 정치인은 스스로 이 유한게임을 끝낼 의지와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고도 슬픈 일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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