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드 라 투르,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든 사기꾼’(1635) [필자 제공] |
우리 몸속 호르몬은 신진대사활동만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감정 또한 지배한다는 것도 알고 계시나요? 감정을 관장하는 대표 호르몬으로는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이 있습니다. 이 호르몬들은 분비 정도와 효과에 따라 감정변화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도파민은 타인 혹은 사물, 상황 등을 바라볼 때 작용하는 감정을 조절합니다. 상대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을 판가름하기에 ‘호감 호르몬’으로 불리지만 동시에 ‘충동 호르몬’으로 불리기도 하는 특이한 호르몬입니다. 과다 분비되거나 과다한 작용을 보이면 그 사람은 대상에 대한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되지요. 나아가 그 정도가 지나치면 집착, 탐닉, 의존 경향마저 보입니다.
도파민의 작용이 억제되지 않고 내면에 극도의 영향을 끼치게 되면 무슨 일이든 비극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감정의 자기파괴 현상이 일어나고 결국에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무서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죠. 사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나 ‘오셀로’ 같은 비극작품 속 주인공들을 보면 충동과 집착, 의심과 망상 등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런 작품들의 끝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처절하게 ‘절규’하는 모습으로 장식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 혹은 상황을 접한 뒤 4분 안에 도파민이 나오지 않는다면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뀐다는 사실, 혹시 아시나요? 그리고 호감이 너무 지나치면 무언가를 충동적으로 격발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파민을 충동호르몬이라 부르는 거죠. 만약 홈쇼핑 방송을 보다가 충동 구매를 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때 도파민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 도파민은 감정과 동기 부여부터 욕망과 쾌락, 학습 등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이외에도 도파민은 집중력과 기억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지나친 집중과 과도한 감정은 집착이 되기 마련이고, 그 집착은 결국 중독으로 치닫습니다. 도파민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파국의 드라마에서 충동구매 같은 건 애교입니다.
약물중독, 도박중독, 알코올의존증 등 우리 삶을 망가뜨리는 중독의 이면에는 도파민이 도사리고 있죠. 끊으래야 끊을 수 없고, 채우래야 채울 수 없는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의 나약함, 그 원인이 호르몬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멋없는 결론일까요?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가 그린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든 사기꾼’은 얼핏 보면 여러 명이 둘러앉아 카드놀이를 하는 평범한 장면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들의 얼굴, 눈짓, 행동은 여간 수상한 것이 아닙니다. 얼굴이 그늘에 가려진 맨 왼쪽 남자는 자신의 벨트 뒤에 숨겨뒀던 에이스 카드를 빼내고 있습니다. 중앙에 화려한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여성을 보세요. 술병을 가져온 소녀와 눈짓을 주고받는 게 보이시나요? 아마도 가장 오른쪽에 있는 순진한 청년을 술에 취하게 할 궁리를 하는 모양입니다. 요란한 깃털 모자와 보석으로 치장된 옷을 입은 이 부잣집 도령은 곧 큰돈을 잃게 될 것도 모른 채 도파민 호르몬의 지배를 받아서 카드를 고르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든 사기꾼’에는 각자의 욕망 아래 편법을 시도하는 도박꾼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졌습니다. 순진하게 카드에만 열중하는 오른쪽 청년 또한 도박이 주는 중독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겠죠. 원래 도파민은 사람에게 보상심리를 유도해 자기 행동 자체에 동기를 부여하게 하거든요. 예를 들자면 도박으로 큰돈을 따거나 마약을 흡입해 극도의 쾌감이 느껴지는 순간, 체내에서는 엄청난 양의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그 짧은 순간에 사람의 뇌는 갑자기 증가한 도파민의 효과를 기억하게 되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강한 쾌감을 얻고자 하는 충동에 노출됩니다. 실제로 이전 연구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가 마약중독자의 뇌와 똑같은 활동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지나친 권력욕, 심지어 근래 들어 이슈가 되는 갑질과 관련해서도 도파민 과다 분비가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권력을 남용하는 과정에서 도파민 분비가 비정상적으로 촉진되면 이로 인해 공감능력이 상실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 오직 목표달성을 위해서만 행동하게 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것입니다.
고려 충혜왕 때 문인 이조년이 지은 시조로 후대에 ‘다정가(多情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시조 속 ‘다정(多情)도 병(病) 인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구절처럼 흰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은하수가 흐르는 봄밤에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표현돼 있습니다. 절절한 연모의 감정이 느껴지는 한편 잘못하면 사달이 나겠다 싶기도 합니다. 애끓는 우울증을 동반하는 사랑의 감정은 때때로 병적인 집착이 되기도 하니까요.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앞서 말씀드린 지나친 충동과 욕망 이외에도 조울증이나 조현증 같은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도파민이 너무 부족해져도 우울증이 유발되는 등 문제가 생기지요. 하지만 적당한 도파민은 공부나 일에 대해 능률을 높여주고, 이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면 쾌감과 함께 도파민의 분비를 더욱 높이게 되는 선순환이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도파민의 균형이 중요한 것입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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