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예산으로 지난해보다 18조2000억원(2.8%) 증가한 656조9000억원을 제시했다. 2.8% 증가는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세 수입을 비롯한 내년 정부의 총수입이 올해보다 13조6000억원이 줄어들 전망(612조1000억원)에도 약자복지 강화, 미래준비 투자, 경제활력 제고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국가의 본질 기능 뒷받침 등 4대 중점 분야 지출은 늘렸다. 국채 발행으로 지출 규모를 늘리기보다 강도 높은 재정 구조조정으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이전 정부가 방만한 재정운용으로 국가채무가 5년간 400조원이나 불어난 점을 반면교사로 재정 체질개선에 나선 점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긴축예산을 편성했음에도 내년 나라살림(관리재정수지) 적자가 90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다. 올해 58조2000억원에서 30조원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GDP 대비 적자비율도 2.6%에서 3.9%로, 1.3%포인트 증가한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어진 적자 행진에 비하면 나아지긴 하지만 통상 3% 이하가 기준인 건전 재정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경기부진으로 3대 세목인 소득세·법인세·부가세 세수 여건이 크게 나아지지 못하면서 재정위기가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저출산·고령화 대응 등 쓸 곳은 점점 많아지는데 수입은 올해 400조5000억원에서 내년 367조4000억원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세수 펑크를 막고 재정을 튼실하게 하려면 결국 기업 활력의 제고가 급선무다. 3대 세목이라지만 그 트리거(방아쇠)는 기업의 좋은 실적이다. 기업의 성장은 법인세는 물론 종사자들이 내는 소득세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처분 소득이 늘어난 종사자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해야 부가세도 확보된다. 그런데 증권업계가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657곳의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업들이 올해 상반기 실적을 근거로 책정해놓은 내년도 납부예상 법인세는 20조3225억원에 그쳐, 지난해(34조2546억원)보다 40.7%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납부 법인세로 지난해 상반기 재무제표에 7조1071억원을 계상한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에는 2412억원을 잡았다. 기업 실적 부진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우리가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재정건전성에 기반했다. 외환위기 때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10%를 갓 넘긴 상태였다. 이 수치가 내년에는 51%로 늘어난다. 저성장 먹구름이 짙어가는데 재정 집행마저 위축되면 위기에서 벗어날 기력을 상실할 수 있다. 기업 활력이 건전재정의 단초임을 새기고 민관이 합심해 뛰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