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22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이름을 바꾸고 새 출발을 알렸다. 새 명칭인 한경협은 1961년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 등 기업인 13명이 설립한 경제단체 이름이다. 이후 조직 규모 확대를 반영해 1968년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바꿨다. 당시 발기인들은 기업 활동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다는 ‘사업보국’을 경영이념으로 삼았다. 55년 만에 간판을 바꿔 다는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전경련이 새 간판을 달았지만 많은 국민의 뇌리에는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로 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국정조사 청문회에 불려나와 쩔쩔 매던 기억이 생생하다. 전경련이 이날 총회에서 정치·행정권력 등의 부당한 압력 단호히 배격,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확산에 진력,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대·중소기업 상생 선도 등의 내용이 담은 윤리현장을 발표했다. 전경련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정경유착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선언적 의미에 그쳐선 안 될 것이다. 제도적 뒷받침과 내부 장치를 확립해 ‘그만하면 믿을 만하다’는 국민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삼성을 팔두로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전경련을 탈퇴했던 4대그룹이 속속 합류하며 한경협이 완전체의 모습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정경유착이 발생하면 즉시 탈퇴할 것”을 권고했는데 다른 그룹도 이 같은 단호함을 보여야 한다.
한경협의 수장으로 경제계의 대표적인 국제통인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추대된 것은 시대흐름상 의미가 크다. 미국 다트머스대 출신인 류 회장은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과 함께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이사도 맡고 있다. 또 일본에서 고교를 나와 한일경제협회 부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로 한·미·일이 고도의 경제안보 동맹으로 결속하는 시기에 국익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할 적임자다.
한국 경제는 지금 중국발 부동산 위기와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라는 이중 펀치를 맞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한국의 성장률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1%대 저성장 늪에 갇힐 것이라는 경고를 날리고 있다. 한경협이 이런 난관을 돌파할 대안을 찾고 활로를 제시하는 싱크탱크로 거듭난다면 존재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정경유착과 긴밀한 소통은 구분돼야 한다. 세계 경제는 정부와 기업이 원팀으로 뛰는 국가대항전이 된 지 오래다. 윤석열 정부는 ‘민간 중심 경제 실현’과 ‘2027년까지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을 목표로 한다. 한경협이 충실한 파트너 역할을 해낸다면 재계 맏형 지위도 자연스레 회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