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제니·슬램덩크 ‘디깅러 세상’ 왔다…불황속 신인류 “행복하게 살래” [언박싱]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흥행에 힘입어 ‘슬램덩크’ 만화 단행본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진열되어 있는 슬램덩크 만화책. [연합]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이제는 “뭐 하나에 몰입이나 덕질을 못하면 불행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디깅력’이 기업들의 전략 방향을 뒤바꿀 정도로 고도화된 하나의 놀이가 됐다. 디깅력이란 좋아하는 것을 ‘파고 또 파며’ 과소비하는 ‘디깅(digging)’ 능력을 일컫는다.

특히 경제 불황이 깊어지는 올해는 디깅 소비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가격이 매우 저렴한 상품이 아니라면, 차라리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를 제대로 보상받고 싶은 소비 성향이 짙어지면서다. 이 같은 소비 문화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까지 결합돼, 자랑하고 싶은 인간의 본연적인 욕구까지 더해졌다. 이에 유통·제조기업들은 그동안 개별 사업에 적용된 팬덤 마케팅을 올해 기업 전사 전략으로 둘 정도로 해당 비중을 키웠다.

지난달 6일 서울 용산구 이마트 용산점에서 위스키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선 소비자들. [연합]
방 자랑대회에 참가한 한 식물 디깅러의 거실. [유튜브 캡처]

지난해 가장 인기 있는 키워드를 꼽는 ‘유튜브 트렌드 2022’ 결산 자료에 따르면, 한국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후반 출생자) 응답자의 55%가 자신을 무언가나 누군가의 ‘찐팬’이라고 답했다. ‘오픈런에 진심’, ‘위린이(위스키+어린이) 일기’, ‘조공 팬질’, ‘슬덩(슬램덩크)을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 ‘돈쭐내러 왔다’ 등 표현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디깅은 오타쿠, 과몰입, 덕후, 팬슈머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엄밀하게 보면 의미가 다르다. 과거에만 해도 몰입의 목적은 자기 만족에 있었다. 좀 더 나아가 성숙한 팬덤 문화를 만든다는 의식에 바탕을 뒀다. 일대일 대화나 커뮤니티 중심으로 특정 소수의 그룹 내에서 소통이 이뤄진 이유다.

메간 트레이너 ‘메이드 유 룩(Made You Look)’ 곡 가사에 맞춰 스타일링을 한 유튜버. [유튜브 캡처]

하지만 지금의 몰입은 연예인뿐만 아니라 인플루언서, 미디어 콘텐츠, 제품, 경험 등 대상만 해도 다양한 뿐 아니라 SNS와 만나면서 전개 양상까지 완전히 바뀌었다. 완성도 높은 재미 그 자체를 소셜 공유하는 것이 몰입 목적이 된 것이다. 자기 자신이 몰입하고 있는 사실 자체를 과시하고 싶은 욕구까지 맞물렸다.

실제로 틱톡,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수백만개에 이르는 인기 해시태그가 ‘#POV’다. ‘관점(Point Of View)’을 의미하는 단어로, 주로 짧은 영상을 이어 붙여 하나의 게시물로 만든 콘텐츠에 붙는다. 연기는 물론 분장, 의상, 도구를 활용해 만든 새로운 콘텐츠를 의미하기도 한다.

뉴진스의 ‘하입보이(Hype Boy)’ 춤을 추며 상황극을 연출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예를 들면 뉴진스의 ‘하입 보이(Hype Boy)’ 춤을 추며 새로운 상황극을 펼치는가 하면, 메간 트레이너 ‘메이드 유 룩(Made You Look)’ 곡 가사에 맞춰 구찌, 루이비통, 베르사체 등 명품 브랜드 콘셉트 스타일을 연출하는 영상도 있다. ‘드덕(드라마 덕후)’들은 서로 다른 드라마의 장면을 잘라 붙인 2차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브에 공유하기도 한다.

9년 차 CU 아르바이트생이 겪는 일상 속 에피소드를 60초 남짓 시트콤으로 제작한 CU. [유튜브 캡처]

적극적인 소통으로 완성도 높은 재미를 SNS에 공유하는 문화가 ‘주류 트렌드’를 주도하면서 기업의 상품 판매 전략도 바뀌었다. 중국 사업이 부진한 아모레퍼시픽이 꺼내든 돌파구 중 하나가 다름 아닌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다. 제니를 헤라 브랜드 모델로 선정, 브랜드 화보 촬영 미공개 컷을 포토카드로 만들어 헤라 메이크업 상품과 함께 신년부터 온라인 판매한 것이다. 해당 제품은 중국으로 무료 배송됐는데,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포토카드가 동이 나 추가 제작 요청이 빗발쳤다. 글로벌 팬들의 디깅력이 마케팅 방향을 뒤바꾼 사례다. 이 같은 인기에 힘 입어 헤라는 제니 아크릴 등신대를 기프트 선물로 제작했다.

아이돌 그룹과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기획한 한 화장품 제조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오프라인 입점 수수료를 줄이는 대신, 연예기획사 콘텐츠 지적재산권(IP)이나 마케팅 관련 비용이 크게 늘고 있다”고 부연했다.

헤라 상품을 80달러 이상 구입하면, 제니 미니 아크릴 등신대가 선물로 제공된다. [아모레 글로벌몰 캡처]

더욱 강력하게 몰아치는 위스키 열풍에 CU는 지난해 말 MZ세대 주류 전문 상품기획자(MD)로 구성된 주류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이 밖에도 9년차 CU 아르바이트생이 겪는 일상 속 에피소드를 60초 남짓 시트콤으로 구성한 ‘편의점 고인물’도 제작해 공개, 방영 39일 만에 조회 수 1억회를 돌파했다. ‘하이퍼 리얼리즘 서사’에 진심인 20~30대 소비자가 이야기에 빠져들도록 만든 콘셉트형 디깅 전략이 먹혀들어간 결과다.

삶이 팍팍하고 고단해지는 불황이 예고되는 만큼, 올해 팬덤 마케팅은 디깅 소비와 맞물려 강력한 힘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30~40대 남성이 특히 열광한 새해 첫 트렌드가 ‘슬램덩크 열풍’이다. 지난달 4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200만 관객을 넘어섰다. 단행본은 두 달 만에 100만부를 기록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더현대 서울에 차려진 ‘더 퍼스트 슬램덩크 팝업스토어’에는 한정판 유니폼과 피규어를 구매하기 위한 소비자가 몰려들면서 연일 ‘오픈런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dsu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