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금융업 위축 제조업 재건
가계구매력 탄탄, 해외투자 증가
물가 상승 경기 반영…긴축 지속
他 국가는 외환위기 가능성 커져
1980년대 초 미국의 초강력 긴축은 제조업의 붕괴를 가져왔다. 금리를 높이자 일본과 독일에 열세였던 미국 제조업들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미국의 금융이 급부상했다. 미국의 긴축은 달러를 빌렸던 국가들의 외채 부담을 높였다.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들은 달러에 집착했고 이는 지속적인 수요로 이어졌다.
원유 국제거래를 달러로 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페트로 달러’ 협정 덕분에 달러 발행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얼마든지 찍을 수 있는 달러로 공산품은 사오면 되니 제조업 공백은 소비로 메워졌다. 역사는 반복된다. 40년만에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조짐이다.
13일 미국 소비자물가(CPI)가 예상보다 많이 높게 나왔다. 유가도 내렸으니 물가 오름폭도 줄고,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가파르게 올릴 수 없을 것이란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증시는 추석 연휴 동안 올랐던 상승폭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고, 채권 금리는 다시 전고점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8월 미국 물가를 보면 유가도 음식료 값 상승세는 주춤해졌지만 이 둘을 제외한 근원물가(Core CPI)가 올랐다. 상품과 서비스는 물론 가장 비중이 큰 주거비용(housing cost)이 급등(전월대비 0.7%)했다. 물가가 오르는 것은 구매력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이는 각종 경제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8일 발표된 8월말 노동부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는 석 달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예상치를 밑돌았다. 앞서 나온 8월 비농업 신규취업자수는 시장 기대를 충족했다. 공급관리협회(ISM)의 8월 서비스업 경기지수는 4월 이후 최고다. 유럽으로의 에너지 수출이 늘어 31년만에 경상흑자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달러 가치는 이미 20년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달러를 쓰지 않는 나라들 보다 원자재 수입가격 부담이 덜하다. 달러를 쓰지 않는 나라들은 환율을 안정시켜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 훼손을 감수하며 금리를 올려야 한다. 미국은 금리를 올렸지만 달러가 강해지면서 상대적 구매력이 더 강해졌다.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2021년 미국의 중위가구 소득은 7만800달러로 2년 연속 감소세였다. 올해에도 감소세가 유력하다. 하지만 달러 강세를 감안하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 미국은 아무래도 수요를 눌러야 물가가 잡힐 듯한데, 그 역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적국을 설정하면서 시작한 미국의 경제전쟁이 달러 블랙홀을 만들고 있다. 레이건 시대에 무너진 제조업 경쟁력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했지만 정작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쪽은 미국의 우방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의회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통과된 데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생명공학·바이오 관련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반도체·전기자동차·2차전지 등에 이어 의약 부문에서도 미국에서 생산한 제품이 아니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이다. 웬만한 첨단산업은 이제 모두 미국에 생산기반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기업들이 가진 달러들이 미국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공장이 지어지고 일자리가 늘어나게 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계속 올려야 하는 상황에 올 수도 있겠다. 물론 이 경우 다른 나라들은 투자 정체와 달러 이탈로 고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긴축은 늘 다른 나라들의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다른 나라들이 이번 달러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 금리를 높이며 안간힘을 쓸 수 밖에 없다.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여서 단기간에 구도가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앞으로 상당기간 높아진 금리를 가계와 기업이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수출 비중이 크다. 미국이 수입 대신 자국내 생산을 늘리면 타격이다. 우리는 가계부채 부담도 세계에서 가장 무겁다. 소득 개선이 없다면 빚 부담이 경기를 짓누르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기업이 계속 경쟁력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가계가 소득을 늘려 부채를 줄일 방안이 시급하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