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제공] |
[헤럴드경제=오연주 기자] “두번째, 네번째주 일요일에도 마트 갈 수 있나요?”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새삼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대통령실이 우수 국민제안 중 중 하나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선정하자, 이마트와 롯데쇼핑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골목상권 보호와 노동자의 쉴 권리를 주장하며 맞서고 있습니다.
온라인과 경쟁하는 현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온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이번에는 과연 변화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대통령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최저임금 차등적용, 콘택트렌즈 온라인 구매 허용 등 10건의 우수 국민제안을 선정했습니다. 대통령실은 21일부터 열흘간 국민제안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투표로 이들 10건 중 3건을 추린 뒤 그 내용을 국정에 반영할 방침입니다.
22일 기준 대통령실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 현황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는 10개 제안 중에 가장 많은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최종 3건에 선정될 가능성도 높은 상황입니다. 그간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에 불편함을 토로하는 소비자 여론은 커져왔고, 이번 투표 결과 역시 이런 여론이 반영된 결과인 듯 합니다.
지난 2012년 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은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매월 2일 의무 휴업일을 지정하며 전통시장 반경 1㎞ 내 3000㎡ 이상 점포 출점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둘째, 넷째주 일요일에 문을 닫고 경기도 일부지역처럼 일요일 대신 수요일에 쉬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초 목적인 전통상권 활성화 효과를 두고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연구결과가 많았습니다. 올 초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실시한 유통규제 관련 소비자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 휴무일에 전통시장을 이용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8.3%에 불과했습니다.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67.8%는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오히려 주변 상권이 침체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아 가장 덕을 본 곳은 규제를 빗겨간 식자재마트라는 말도 나옵니다.
대형마트업계는 이번 투표에 환영의 뜻을 표했습니다. 그간 의무휴업일에만 손해가 국한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형마트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과 경쟁이 심화됐는데, 이커머스는 계속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연속성이 곧 경쟁력”이라며 “의무휴업일에 영업하게 되면 하루 매출이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큰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의무휴업일과 심야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다면 기존 자산인 오프라인 점포도 100%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반대의 목소리도 여전합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는 21일 “골목상권 보호는 국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발하며 성명을 냈습니다. 한상총련은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은 이미 2018년 대형마트 7곳이 낸 헌법소원에서 합헌 결정된 바 있다”며 “적법성이 입증됐음에도 새 정부는 국민투표를 통해 골목상권 최후의 보호막을 제거하고 재벌 대기업의 숙원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유통분과(마트노조)도 이날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반대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열고 “마트 노동자의 휴식권을 인기 투표에 부친 것”이라며 투표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이마트 제공] |
일단 이마트와 롯데쇼핑 주가는 국민제안 내용이 발표된 20일 큰 폭으로 오른 뒤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이번에는 진짜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도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규제 완화 검토에 나섰습니다.
NH투자증권·KB증권·교보증권 등은 월 2회 의무휴업 폐지 시 대형마트 업체가 기대할 수 있는 연간 매출 증가 규모를 이마트 9600억원, 롯데마트 3800억원∼3840억원으로 각각 추산했습니다. 매출 뿐만 아니라 영업이익 증가폭도 고무적인데 이마트 1440억원(NH)∼2000억원(KB), 롯데마트 500억원 안팎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국민제안 투표 결과에 따라서 당장 의무휴업이 폐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법 개정까지 여야 합의도 남아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지난해 6월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 및 준대규모점포 매장이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른 통신판매를 하는 경우에는 의무휴업 및 영업시간 제한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유통산업에 규제 일변도 정책을 펴던 민주당이 내놓은 개정안으로 마트의 온라인 배송 규제를 완화하는 것으로 당시 큰 주목을 받았으나, 현재까지 이 법안은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온라인유통 등 새로운 형태의 소매업은 더욱 급성장해 유통산업의 생태계가 급격히 변화했습니다. 그러나 과거 대규모점포 등에 대한 규제만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롯데마트 제공] |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생긴 지 10년이 넘는 동안 정작 소비자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인 적이 없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독일어과·유통학회 고문)는 “유통은 제조업의 마지막 관문으로 혁신을 창출하는 관문이자 실핏줄 역할을 해야하며, 소비자 편의성이 우선이다”라며 “한쪽을 막을 게 아니라 지역특화 비즈니스라든가 소상공인에게도 4차산업 혁명에 걸맞는 컨설팅을 해주고, 인프라와 정보를 제공해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나가야할 것”이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 정연승 단국대 교수(경영학부·전 유통학회장)도 “맹목적인 구호에 치우쳐 정작 변하고 있는 유통산업 현실에 무의미한 법이 많았다. 유통산업발전법이 아닌 규제법이 됐는데 정작 발전은 누가 시키느냐”며 “유통정책은 소비자 관점에 맞춰야 되고, 일부 상인단체가 아닌 실질적인 상인의 의견을 반영해 이들에게도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는 이달 31일까지 진행됩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실제로 폐지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투표로 당장 결판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민심이 어떤 정책을 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o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