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RF] |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폐플라스틱을 석유, 혹은 석유화학제품의 원료로 돌려보낼 길이 열렸다. 석유로 플라스틱을 만들고, 버려진 플라스틱을 다시 석유로 만드는 ‘무한 재활용’이 가능해졌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하지만, 열분해 기술은 재활용의 한 방안으로 자리잡기엔 아직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다. 우선 경제성이 낮고, 심지어 열분해 과정이 염화수소 발생 등으로 대기를 오염시킨다는 우려도 있다. 자칫하면 플라스틱을 얼마든지 소비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열분해 기술을 장려하기에 앞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4일 환경부는 열분해유의 폐기물 분류를 변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플라스틱은 석유 찌꺼기를 이용해 생산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해서 얻은 기름을 다시 석유나 석유화학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기존 재활용 유형에는 열분해유·가스의 원료 사용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어 재활용이 불가능했다.
법이 개정되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낸 기름을 이용해 다시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무한 순환의 법적 토대가 갖춰진다. 또 열분해 과정에서 생산된 합성가스에서 수소를 개질, 추출해 연료전지나 수소차 충전에 활용할 수도 있다. 버려진 플라스틱에서 친환경 자동차의 연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플라스틱 열분해 기술을 ‘순환경제 및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과제’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폐플라스틱 열분해 처리 비중을 기존 0.1%에서 오는 2030년 1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폐플라스틱 열분해 처리 규모를 연간 1만에서 2025년 31만t, 2030년에는 90만t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열분해는 플라스틱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일단 아직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열분해는 단순히 녹여서 성형만 하는 물질 재활용과 달리, 서로 다른 소재가 섞인 플라스틱으로도 고품질 수지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왁스 등 유기물 찌꺼기가 남는 탓에 원료로 쓸 수 있는 유분의 수율이 낮아, 실제로는 대부분 연료용 재생유 추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열분해되고 있는 플라스틱이 대부분 비닐류인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비닐은 대부분 폴리에틸렌(PE) 아니면 폴리프로필렌(PP)이다. 소재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나마 유분의 수율을 맞출 수 있다. 환경부 관계자도 “페트병이나 배달용기 등 비닐 외 플라스틱을 열분해로 재활용하기엔 아직 기술 개발이 덜 이뤄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난 2019년 보고서를 통해 “화학적 재활용은 아직 초기 개발 단계에 있고, 일부 플라스틱엔 적합하지 않다”며 “투입되는 에너지 및 유해 화학물질의 양과 비용 역시 고려해야 한다. 이 같은 한계로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포장재의 상당량은 가까운 미래에도 계속해서 폐기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세계 소각로 대안 연합(Global Alliance for Incinerator Alternatives)이 지난 2020년 발간한 보고서도 참고할 만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부터 계획된 미국 내 37개 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시설 중 현재 3곳만 가동 중이며, 이 중 어느 곳도 성공적인 새 플라스틱 생산에 성공한 곳이 없다. 보고서는 “화학 재활용은 오염을 발생시키고, 에너지 소모가 많으며 기술의 실패 가능성이 높아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실행 가능한 해결책은 아니다”고 결론지었다.
수소 트럭 기업 니콜라에 대한 공매도 보고서를 작성해 유명해진 업체 힌덴버그 리서치(Hindenburg Research)도 화학적 재활용 기술에 의구심을 드러낸 바 있다. 화학적 재활용(해중합) 기술로 주목받았던 캐나다의 유명 재활용 업체 루프(Loop)에 대해 ‘실행 가능한 기술이 없는 교묘한 속임수(smoke and mirrors with no viable technology)’라는 평가를 내놓은 것이다.
화학적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모 기업 관계자는 “플라스틱 열분해는 과거 정부가 중소기업들과 함께 실증 연구를 추진했던 영역이고, 결국 실패로 끝난 바 있다”며 “최근 친환경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산업계 관심이 높아진 분위기에 기대 대기업들을 다시 끌어들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과거 실패에 대한 반성 없이 정책 담당자만 바뀐 듯하다”고 지적했다.
아직 친환경성이 입증되지 않은 플라스틱 열분해가 재활용의 한 방식으로 인정되면 통계의 착시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일반 가정이나 소규모 사업장에서 배출된 생활계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59.8% 수준이다. 하지만, 직전해 그린피스는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22.7%에 그친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차이는 ‘재활용’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환경부는 재활용 선별장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모두 재활용 처리된 것으로 집계한다. 실제 물질로 재탄생하는 사전적 의미의 재활용뿐만 아니라, 고형연료화해 태우거나 압축·파쇄 처리한 것들까지 모두 재활용됐다고 보고 있는 것. 열분해 재활용이 늘어나면 이같은 통계 착시가 심화할 수 있다.
또 다른 관련 업계 관계자는 “현재 환경부 통계에는 플라스틱을 열분해한 것과 소각해서 에너지원을 얻은 것 역시 재활용됐다고 분류하고 있는데, 실제 환경에 대한 기여와 무관하게 ‘우리가 재활용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착시를 일으킨다”며 “최대한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고, 어쩔 수 없이 써야한다면 소재를 단일화해 물질 재활용의 효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hum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