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 증가와 동시에 대가족화도 진행
나홀로세대와 은퇴 부모 ‘합가’ 경향 커져
‘부모+비혼자녀’, ‘고령부모+중년자녀’ 모델
따로또같이 주택 눈길...일본에선 ‘2.5세대 주택’ 화제
미래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많은 설(說)이 있다. 분석 잣대와 적용시점별로 시나리오는 다양하지만 지금과 꽤 다른 모습일 것은 확실하다. 사람이 바뀌니 공간이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순서다. 기본적으로 저출산·고령화로 인구 양태가 변했다. 구매력과 가치관의 차이는 선호하는 주택 수요를 바꾼다. 말하자면 인구변화발 집의 재구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시나브로 변화조짐은 시작됐다. ‘인구감소→욕구변화→선호가치→수요확인→가격반영→공급전환’의 앞단은 이미 현실화됐다.
욕구가 선호를 만들고, 수요가 가격을 정하는 건 경제 작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인구변화로부터 미래기회를 읽으려면 변화하는 욕구를 파악해야 한다. 소비자인 고객의 양적·질적변화가 ‘비즈니스 모델’의 성패를 쥘 수밖에 없다.
집은 필수 소비재로, 가장 묵직한 내구 소비재다. 연한도 길고 가격도 세다. 삶에서 1~2회 구매조차 부담스런 품목이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의 인생 최대 고가 쇼핑이 된다. 사람들은 언제 주택 구매를 결정할까. 당연히 ‘필요할 때’다. 필요한 순간이라는 건 ‘취업→결혼→육아→독립’의 생애 이벤트와 연관된다. 가족결성·독립분화가 주요 변수다.
‘월세→전세→자가’와 ‘소형→대형’의 연결처럼 연령과 소득에 따라 주택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가족과 소득의 변화가 신규 수요든 교체 수요든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투자용과 가수요도 가족변수와 직결된다. 대부분이 투자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속이나 증여 욕구 때문이어서다.
2가구 이상이 따로 거주하면서도 함께 생활하는 것처럼 지낼 수 있는 아파트 설계도. |
인구변화는 겉(양)과 속(질)을 다 봐야 한다. 양적 감소만큼 복잡한 질적 변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1~2인가구 수요는 늘어난다. 늘어나는 1~2인가구는 집값을 떠받칠 수 있을까? 구매력이란 막강한 ‘결정 변수’를 따져봐야 한다. 달라진 인구구조의 새로운 취향과 가치는 어떻게 될까. ‘저성장 시대’, 대졸 이상의 ‘고학력’ 출신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결혼과 자녀에 대한 ‘가치관’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구매력을 갖췄다고 주택을 지금처럼 계속 소유하려는 문화는 계속될까. 미래엔 어떤 유형의 주택이 인기를 끌까. 아파트 중심의 주택시장은 계속 유지될까.
질적 욕구 변화를 읽는 건 그만큼 어려운 과제다. 물론 불가능하진 않다. 정답은 아니나 힌트는 있다. 집을 둘러싼 ‘수급’ 문제(겉)이 아닌 ‘거주환경’(질)으로 보면 달라진 선호는 확인된다.
▶‘싱글사회’, ‘대가족화’란 상반된 키워드= 이를 확인할 상반된 키워드가 ‘싱글사회’와 ‘대가족화’다.
싱글사회는 1인가구가 대세인 상황을 말한다. 우리사회에 어느새 900만으로 늘어난 1인가구의 거센 에너지는 주택시장의 관심사로 안착했다.
그런데 대가족화라는 낯선 키워드가 등장했다.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하지 않는 요즘 트렌드를 고려할 때 흐름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해보면 대가족화를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는 많다. 먼저 ‘비혼화’다. 50세까지 결혼하지 않으면 비혼으로 잡힌다. 연령대 별로 미혼에서 비혼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한국은 남녀각각 10.9%·5% 수준이다(2015년). 아직은 소수파나, 갈수록 늘어난다. 2025년 남녀각각 20.7%·12.3%로 뛴다고 한다. 2035년엔 29.3%·19.5%로 불어난다. 10년 터울로 10%P씩 증가한다.
그만큼 ‘평생혼자’의 비혼 인생이 많아진다. 900만 1인가구(30.4%)를 볼 때 증가세는 당연지사다. ‘나홀로’를 흡수한 MZ세대가 나이를 먹으면 결혼 안한 아저씨·아줌마는 정점을 찍는다. 젊을 때는 독거가구, 분가생활을 선호한다. 부모도 본인도 경제력이 되는 한 ‘따로’ 사는 게 좋다. 이른바 ‘골드 싱글’이다.
문제는 중년 이후부터다. 싱글이라 책임져야할 자녀는 없지만, 중년 특유의 직장갈등과 부모봉양 문제가 닥친다. 고독사처럼 노후에 닥칠 불안도 덧대진다.
나홀로 삶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순간, 유력한 대안이 은퇴 부모와 ‘합가’ 카드다. ‘부모+비혼자녀’의 살림 합치기다. 처음부터 함께 살며 ‘고령부모+중년자녀’의 2세대 모델을 유지할 수도 있다. 이는 ‘부모+자녀+손주’의 전통대가족과는 다르나, 급속한 가족분화를 볼 때 현대판 대가족으로 봐도 손색없다.
일부지만 ‘부모+(기혼자녀+비혼자녀)+손주’의 합가 모델도 있다. 이는 기혼자녀와 근거리에 사는 ‘근거(近居)모델’과 구분된다. 기혼 자녀 가족이 부모와 ‘국이 식지 않는 15분의 거리’에 따로 살며, 부모가 기혼 자녀의 아이를 양육해주고, 자녀는 생활비 제공 등 부모 봉양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근거모델은 대부분 일시적이고, 조건적이다. 특히나 비혼의 싱글자녀에게 근거모델은 독립거주의 장점보단 불편함과 경제적 부담을 더 느끼게 할 수 있다. 핏줄의 공감력과 경제적 비용을 고려할 때 비혼의 싱글자녀는 근거모델보단 동거를 선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세분화된 ‘캥거루족’의 출현이다. 일본은 부모의존형 독신자녀를 ‘패러사이트(Parasite) 싱글’로 부른다. 기생한다는 나쁜 의미다. 낮은 독립심과 넉넉한 부모지갑, 거세진 경쟁구도가 맞물린 결과다. 이들이 나이를 먹으며 ‘중년 캥거루족’이 된다. 35~44세 5명 중 1명이 중년캥거루란 통계도 있다.
영국(Kippers), 캐나다(Boomerang Kids), 프랑스(Tanguy), 호주(Mama hotel) 등에도 유사유형은 있다.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스커럼(Scrum)족’처럼 주거·생활비 절감을 위한 경제실리 차원에서 대가족과 동거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경제 상황, 인구 변화 등 전반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이런 형태의 캥거루족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독립·분가에 익숙한 서구와 달리 한국특유의 과도한 자녀보호관도 이런 경향성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최근 미국의 NBC는 부모와 함께 사는 한국자녀의 ‘비독립 현상’을 다뤄 화제를 모았다. 30대의 54%, 40~44세의 44.1%에서 이런 비독립 현상이 나타난다는 2021년 기준 통계청 자료를 인용했다. 더불어 캥거루족의 삶은 부모봉양, 금전절약, 가사편리, 대화빈도 등이 장점이라고 밝혀 집값·실업 등 경제 이슈만의 이유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
▶세대동거형 대가족화에 맞춘 주거형태 주목= 세대 동거형 대가족화가 추세라면 이들의 욕구에 부응한 주택 공급은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다.
지금까진 ‘신접살림’이 새로운 주택 수요의 태반을 이뤘다면 앞으로는 더 다양하고 세분화될 수밖에 없다. 1인가구를 타깃한 맞춤식 공간 제안처럼 평생 비혼·캥거루족을 염두에 둔 신주거 형태도 고려해야 한다.
아파트공화국답게 판박이처럼 찍어내는 표준공급형의 경직된 설계에서 벗어나 달라진 인구의 새로운 욕구에 충실한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 예로 일본에선 ‘2.5세대 주택’이란 게 있다. 아사히카세이란 건설업체가 제안한 세대융합적인 다세대주택을 뜻한다. ‘부모+자녀(손주)’의 2세대형 직계모델에 결혼하지 않은 형제자매(0.5세대)가 동거하는 스타일이다.
아사히카세이가 내놓은 2.5세대 주택의 평면도로 2층 주택을 전제로 1층(부모+비혼자녀), 2층(기혼자녀)로 구분한 방식. |
나이를 먹었어도 함께 살기를 원하는 미혼자녀의 공간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현관 등 전용공간과 공유공간을 적절히 나눠 갈등은 축소하고, 관계는 강화하는 방식으로 동거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런 추세는 최근 한국 주택에도 나타나고 있다. 3대가 층수별로 각각 따로 살면서도 함께 사는 ‘따로또같이’ 주택이 인기를 끌며 분양하고 있다. 아파트를 설계할 때, 가족 상황을 고려해 방수나 구조 등을 수분양자가 직접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가변형 설계’를 도입하는 경우도 많다. 임대 목적도 있지만, 부모와 자녀 세대의 공생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
달라진 인구는 새로운 현상을 낳는다. 의식주의 생존전략부터 가치관, 사고판단까지 삶의 곳곳에 투영된다. 이는 집에도 거센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필수적인 생활 기반이자 경제적인 자산 가치까지 중첩된 집의 변화는 그 만큼 드라마틱할 것이다.
성큼 들어선 ‘싱글사회’화는 충격적인 인구변화의 결과물이다. 그 반동기제로 비롯된 ‘대가족화’도 시나브로 확산세에 있다. 양만 보면 질은 놓친다. 새로운 기회는 늘 가려진채 다가선다. 싱글세대 주택공급만큼 대가족화에 맞는 수요도 반영해야 한다. 아직은 대세라고 보기 어렵고, 수면아래 진행되는 흐름이지만, 대가족화는 주거공간의 질적 변용을 선점할 신조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많은 게 달라졌고 또 달라질 것이다. 집의 미래를 가늠할 신조류에 더욱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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