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집값 상승 등 시장 곳곳서 부작용
쫓겨난 세입자도 수리한 집주인도 불만
“정부 정책 못 믿어” 비판 목소리 잇따라
연이은 집값 고점 경고 통하지 않아
“눈에 보이는 주택공급 성과 내놔야”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 방침’이 추진 1년 만에 백지화됐다. 전세시장 불안을 야기한다는 이유에서다. 1년 전에도 제기됐던 우려였고 지난 1년간 시장에서 수도 없이 나타난 부작용이었는데 당정은 이제야 사안의 심각성을 받아들인 모양이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앞에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반대하는 내용의 포스터가 붙어 있는 모습. [헤럴드경제DB] |
시장은 반겼다. 꼬박 1년을 헤맨 탓에 전셋값이 오르고 집값도 따라 오르고 애꿎은 피해자가 속출했지만 늦게나마 잘못된 규제가 바로잡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일 테다. ‘마이웨이’ 정부가 시장 영향을 고려해 고집을 버렸다는 것만으로도 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반가움보다는 분노가 컸다. 느닷없이 쫓겨난 세입자도, 타의로 ‘몸테크’에 나선 집주인도 울분을 토했다. 전셋값 도미노 상승에 매매가격까지 뛰었으니 재건축 이슈와는 상관없는 이들도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봤다. 정부의 잘못된 판단은 오히려 투기세력을 자극했고 투기 수요를 차단하겠다는 애초의 목적은 이루지 못한 채 시장 혼란만 가져왔다.
분노의 목소리는 ‘결국’ ‘또’ ‘역시’로 이어지는 냉소로 귀결됐다. 전문가들은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혀를 찼고 정부 발표를 믿고 움직인 이들은 “또 정부의 말을 따랐던 국민만 바보됐다”고 토로했다. 혹시나 하고 버티던 이들은 “역시 정부 반대로만 움직이면 된다”며 코웃음을 쳤다. 멀찍이 지켜보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냉소적인 반응에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정부가 스물다섯 번의 부동산대책을 내놨지만 시장은 안정되지 않았고 국민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다가 신뢰를 잃어갔다.
정부의 연이은 ‘집값 고점’ 경고가 통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하다. 경제사령탑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집값이 고평가돼 있다며 하락 가능성을 언급했다. 금융정책을 다루는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주무부처 수장인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으름장을 놨지만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 분위기다.
물론 시장의 모든 지표가 집값 상승을 가리키고 있는 영향이 크다. 당장 주택 가격이 오르고 있고 전망지수도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는 데다 올 초 주춤했던 매수심리도 살아났다. 매매시장의 선행지표로 여겨지는 전·월세시장이나 경매시장의 흐름도 집값 상승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이유는 국민이 정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책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규제책은 통하지 않았고 공급책은 안갯속이다. 올해 초만 보더라도 시장 안정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공언했지만 허언이 되고 말았다. 시장에선 “정부 말만 믿다가 ‘벼락거지’에 바보까지 됐는데 정부의 경고를 믿으라는 거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지금 상황에선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을 태세다.
집값이 고점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고 그건 정부가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집값에 거품이 꼈다며 국민을 겁주는 게 아니라 집값에 더는 거품이 끼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경고는 통하지 않았고 국민은 ‘말뿐인’ 정부를 믿지 않는다. 결국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져오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정부가 가시적인 주택 공급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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