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법과 충돌 등에 따른 전세난 악화 우려
전셋값 오르는 등 시장 부작용 이미 현실화
전문가들 “늦었지만 바람직” “현실 검증 부족”
정책 도입 앞서 충분한 사전 점검 필요 지적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헤럴드경제 DB] |
[헤럴드경제=김은희·이민경 기자] “작년 말 집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고 통보했어요. 아이 교육 때문에 이사갈 수도 없는데 전셋값까지 많이 올라 난감했죠. 결국 빌라 월셋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세입자를 쫓아내는 꼴이 됐지만 저희도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들어왔어요. 전 세입자분은 단지 내 반전세를 구해 살고 있습니다. 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이었던 겁니까.”
세입자도, 집주인도 혼란스럽게 만든 ‘재건축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 규제가 추진 1년여 만에 백지화됐다.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 방침이 전세시장 불안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늦었지만 바람직한 조치”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지난 1년간 전세난이 악화되고 재건축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등의 부작용이 이미 현실화됐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지난해 6월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 방침을 발표하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집주인이 임차인을 내보내고 실거주에 나서는 사례가 속출했고 지난해 7월 말 시행된 임대차보호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과 충돌하며 전세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전입신고를 한 뒤 빈집으로 두거나 세대분리를 통해 세대원 일부만 입주하는 등의 ‘꼼수’가 등장하기도 했다.
전셋값이 오르자 인근 아파트의 매매가격도 덩달아 상승했고 실거주 규제를 피하려는 재건축 단지가 조합 설립에 속도를 내면서 재건축 아파트값도 급등했다. 일부 단지로는 막판 투기 수요가 유입되기도 했다.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한 취지의 정책이 되레 투기세력을 자극하는 꼴이 된 셈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강남 주요 재건축 단지에선 정부 정책이 지금이라도 바뀌어 다행이라는 의견과 그동안 쫓겨나듯 이사가야 했던 세입자에겐 어떻게 보상을 해줄 것이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강남의 A공인 대표는 “아파트에 잘살고 있던 사람들을 구태여 내쫓게 만들어서 그 사람들이 인근 빌라로 가고 온동네 전셋값이 다 올랐다”면서 “집주인도 낡은 집에 들어오게 만들고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양치기 소년이 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책 추진에 따른 효과보다 부작용이 컸던 만큼 지금이라도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해 폐지 수순을 밟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다른 실거주 요건을 강화한 제도가 많아 시장 상황이 전반적으로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며 “재건축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시 입주권 부여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조치로 부작용이 더 심했다. 세입자가 좀 더 안정적으로 거주할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시장의 영향을 우선으로 고려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봤다. 정부가 주요 정책으로 추진해온 규제 방안을 철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위원은 “정부로서는 체면을 구기는 측면이 있겠지만 부작용이 있는데 고집해선 안 된다”며 “정책 효과가 크지 않고 부작용이 있는 정책에 대해선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 전체적인 시장 흐름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가 재건축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만으로도 전·월세시장 혼란이 컸다는 측면에선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시장 상황에 대한 면밀한 점검 없이 규제 도입을 공론화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실거주가 아니면 투자나 투기라고 간주하던 정부의 정책방향이 현실과 상충한 결과”라며 “일부 투자 수요는 차단할 수 있을지언정 자유로운 주택 매매를 저해했다. 현실성 검증 없이 이상론을 적용했던 사례”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정책 도입에 앞서 시장 영향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증을 해야 한다고 이들은 힘줘 말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정부가 여러 정책수단을 포함한 하나의 대책을 발표하면 정책 적용시점은 차이가 있지만 시장에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특히 지금처럼 예민한 시장에선 혼란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정책 발표 전 해당 정책이 시장에서 작동했을 때 수혜집단과 피해집단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한 충분한 사전 시뮬레이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재건축사업 추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분양가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등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투기를 배제한 실수요자 위주의 정비사업을 추진하되 공급 확대, 속도감 있는 진행 등을 위해 정비사업 운영 기준에 대해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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