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법과 충돌 등에 따른 전세난 악화 우려
긍정 영향보다 부정 영향 커…“원점화 바람직”
시장 불확실성 키워 전세난 부추겼다는 지적
“정책 발표 전 수혜·피해 관련 시뮬레이션 필요”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정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재건축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 규제가 추진 1년여 만에 백지화된 데 대해 전문가들은 “늦었지만 바람직한 조치”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의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 방침이 전세시장 불안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해왔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집주인이 임차인을 내보내고 실거주에 나서는 사례가 속출했고 지난해 7월 말 시행된 임대차보호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과 충돌하며 전세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정책 추진에 따른 효과보다 부작용이 컸던 만큼 지금이라도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해 폐지 수순을 밟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다만 정부가 일방적인 정책 추진으로 시장 불확실성을 키워 전세난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보인다. 정책 도입에 앞서 시장 영향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국회에 따르면 국토교통위원회는 이날 국토법안소위에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제외하기로 했다.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조합원이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해당 단지에 2년 이상 실거주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지난해 6·17 대책의 핵심 내용이었으나 야당의 반대로 법 통과가 1년째 지연되다 이날 법안에서 결국 빠지게 됐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이러한 조치를 반기는 분위기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다른 실거주 요건을 강화한 제도가 많아 시장 상황이 전반적으로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며 “재건축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시 입주권 부여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조치로 부작용이 더 심했다. 세입자가 좀 더 안정적으로 거주할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도 “실거주가 아니면 투자나 투기라고 간주하던 정부의 정책방향이 현실과 상충한 결과”라며 “일부 투자수요는 차단할 수 있을지언정 자유로운 주택 매매를 저해했던 조치로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특히 정부가 시장의 영향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주요 정책으로 추진해온 규제 방안을 철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위원은 “정부로서는 체면을 구기는 측면이 있겠지만 부작용이 있는데 고집해선 안 된다”며 “정책 효과가 크지 않고 부작용이 있는 정책에 대해선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 전체적인 시장 흐름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가 재건축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만으로도 전월세 시장 혼란이 컸다는 측면에선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시장 상황에 대한 면밀한 점검 없이 규제 도입을 공론화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정부가 여러 정책 수단을 포함한 하나의 대책을 발표하면 정책 적용 시점은 차이가 있지만 시장에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특히 지금처럼 예민한 시장에선 혼란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정책 발표 전 해당 정책이 시장에서 작동했을 때 수혜집단과 피해집단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한 충분한 사전 시뮬레이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형 연구원 역시 “현실성 검증 없이 이상론을 적용했던 사례”라고 꼬집으며 “유사한 사안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가 정책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eh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