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기준 KB국민은행은 46%
실거래 계약건 종합하면 75%
“통계별 특징 파악해야 진짜 변동률 확인 가능”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23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두 배(100%) 가까이 올랐다고 발표했다. 같은 기간 20% 변동률에도 못미치는 정부 공식 통계 보다 실제 3~4배나 더 뛰었다며 정부가 ‘거짓 통계’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공식 집값 통계인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이하 공식통계) 자료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문 정부 내내 시민단체는 물론 언론에서 지적한 문제다.
당장 공식통계와 금융권에서 대출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는 KB국민은행 통계와 차이가 두 배 이상 난다.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4년간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을 공식통계는 18.98%라고 집계했다. 같은 기간 KB국민은행 통계로는 46.17% 올랐다. 공신력이 있다고 평가되는 두 통계의 격차가 두 배 이상 나는 건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고 해도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경실련의 서울 아파트값 조사는 한발 더 나간다. 2017년 5월부터 올 1월까지 무려 93%나 올랐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최근 추세라면 올 상반기 기준 100% 상승을 돌파했을 가능성도 있다.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떻게 조사를 했길래 같은 지역의 아파트 가격 통계가 이리 제각각일까? 도대체 어느 기관의 조사가 제대로 된 것일까?
서울의 한 중개업소 앞을 지나는 시민이 시세 게시판을 보고 있다. [헤럴드DB] |
기본적으로 이들 세 기관의 조사는 모두 전체를 대표할만한 주택 가운데 표본을 뽑아 조사를 한다. 여론조사와 마찬가지다. 172만채나 되는 서울 아파트 전체를 대상으로 매주, 매월 조사 결과를 내놓긴 어렵기 때문이다.
경실련은 정부가 공식통계를 어떻게 작성하는지 근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잘못된 비판이다. 공식통계 설명 자료엔 조사 대상 및 조사 방법을 꽤 자세히 밝혀 놓았다.
부동산원이 작성하는 공식통계는 전국 2만8360개 주택(아파트 1만7190채, 연립주택 6350채, 단독주택 4820채)을 표본으로 삼아 조사한다. 수도권엔 1만3833채(아파트 8306채, 연립주택 3872채, 단독주택 1655채)가 있다. 아파트의 경우 조사대상은 203개 시군구, 연립 및 단독주택은 211개 시군구에 골고루 분포해 있다.
공식통계는 감정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부동산원 조사원이 직접 실거래가 등을 참고해 거래 가능 가격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산정한다. 표본 주택의 실거래 사례가 있는 경우 실거래가격을 거래 가능 가격으로, 실거래 사례가 없는 경우 매매사례 비교법을 활용해 유사 실거래사례를 활용해 거래 가능 가격을 선정한다.
집주인 ‘호가’ 중심으로 작성하는 KB국민은행이나 다른 민간 부동산 조사 기관에 비해 객관적이라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이와 달리 KB국민은행은 전국 회원 중개업소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전국 152개 시군구, 연립주택과 빌라는 133개 시군구에 있는 주택을 대상으로 모두 3만5300개 표본주택(아파트 3만1800가구)을 선정해 해당지역 회원 중개업자들이 입력하는 가격 정보로 시세를 작성한다. 전체 표본가구의 88%에 해당하는 3만1800가구가 아파트란 점이 특징이다.
지역적으로 서울은 7920개(아파트 6750개), 경기와 인천은 모두 합해 1만238개(아파트 9048개)의 표본주택이 각각 활용된다.
KB국민은행이 작성하는 시세 통계는 아파트 중심이기 때문에 아파트 매물 동향, 시세 정보는 좀 더 정확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집주인이 부르는 호가가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언론사들이 주택시장 관련 기사를 작성할 때 수요가 가장 많고, 가격 정보가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되는 아파트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파트 시세 흐름을 잘 보여주는 KB국민은행 지표가 좀 더 정확한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특히 최근처럼 집값 변동폭이 큰 상황에선 더 그런 특징이 드러난다.
서울 아파트 시세 변동률 흐름. 단위는 평당(3.3㎡당) 만원 기준. [경실련] |
이와 달리 경실련은 서울에 있는 25개 구별로 각각 3개 아파트 단지씩 총 75개 단지(11만5000가구)를 표본으로 삼아 아파트값 변동률을 뽑았다. 시세를 직접 조사할 여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 단지의 KB국민은행 시세정보와 통계청 가계금용복지조사 소득 5분위별 가처분소득 조사 결과를 활용했다.
그 결과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3.3㎡당 2061만원이던 서울 아파트값은 2021년 5월 현재 3971만원으로 93%(1910만원)나 올랐다는 게 경실련의 조사 내용이다.
경실련 조사 방법은 서울 25개 자치구의 인구 및 가구 규모 등 구별 상황, 선호지역과 비선호지역, 아파트 밀집 정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3개 단지씩 뽑았다는 것부터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구별 3개 단지도 지역에서 가장 비싸고 인기가 높은 단지를 중심으로 삼을 수도, 중간 수준의 가격 변동을 기록하는 단지를 표본으로 삼을 수도, 별로 오르지 않은 단지를 중심으로 시세를 작성할 수 있다.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경실련이 산정한 ‘문재인 정부 서울 아파트 상승률 93%’란 것도 객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서울 아파트는 정말 얼마나 올랐을까. 부동산원, KB국민은행, 경실련 아파트 통계 차이가 이렇게 큰 데 도대체 시세를 어떻게 봐야 할까?
전문가들은 일단 세 통계의 공통점에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세 기관의 아파트값 상승률이 제각각인 것은 사실이지만, 시세 흐름을 그래프로 그리면 비슷한 모양이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올 상반기 ‘2·4대책’ 이후 잠시 숨고르기를 하던 서울 아파트값은 5월 이후 오름폭이 커지면서 다시 상승폭이 가팔라지고 있다는 점은 부동산원이나 KB국민은행이나 비슷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직후, 잠시 거래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몇 개월 후 집값이 급등하는 패턴을 보이면서,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세 기관 모두 ‘추세’와 ‘흐름’은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정확한 집값 통계는 부동산원에서 내놓는 ‘공동주택 실거래가격지수’(실거래가지수)를 참고하면 된다. 이 지수야 말로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부동산원이 지자체에 신고된 아파트 실거래 내용을 모두 집계해 작성하는 실제 주택 거래 가격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현 제도에서 주택을 거래하면 의무적으로 계약 이후 30일 이내 신고해야 한다. 따라서 가장 최근까지 집계된 실거래가격지수는 ‘계약일’ 기준 올 4월까지다. 5월은 아직 신고하지 않은 건도 있을 수 있어 잠정치로 발표한다.
실거래가격지수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올 4월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75% 올랐다. 문 정부 들어 서울에 있는 아파트 중 매매 거래가 성사된 아파트의 가격이 평균 75%나 상승했다는 이야기다.
부동산원 시세나, KB국민은행에서 작성한 시세 변동률 보다 상승폭이 더 큰 특이한 상황이다. 시세 변동률에는 집주인 호가가 많이 반영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시세 변동률이 실거래가 변동률 보다 크지만 문 정부는 이런 상식도 깼다. 정부가 투기 세력을 잡겠다며 수시로 엄포를 놓는 바람에 시세 작성 기관들이 시세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았던 게 실거래가 보다 낮은 시세 변동률의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실거래가지수는 무조건 객관적일까. 역시 약점이 있다. 실제 거래된 사례만 집계되기 때문에, 거래가 뜸한 지역이나 아파트 단지에 대한 집값 흐름은 반영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강북 특정 지역에 지하철 노선이 새로 뚫리는 등 호재가 생겨 호가는 크게 오르고 있는데, 거래 규제 때문에 매매 사례는 별로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론 많이 올랐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실거래가지수엔 반영되지 않는다.
요즘처럼 각종 통계가 넘치는 시대에 집값 통계는 하나만 믿어선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내 재산과 관련한 집값 흐름에 대해선 한쪽 정보만 옳다고 믿어선 위험하다. 통계는 그 자체로 객관적일 것이라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기관별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도 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기관별 통계 특징, 장단점 등을 파악하고, 수요공급 여건, 주택매매심리지수 등 다른 여러 지표를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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