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막무가내 요구에 세입자 ‘난감’
8·2대책 ‘실거주 2년해야 양도세 비과세’도 한몫
재건축 입주권 2년 실거주 의무 법안도 계류 중
보유세·양도세 강화 등 정부의 각종 부동산정책들로 인해 세입자를 내보내고 집주인이 실거주를 들어오거나 빈집 상태로 두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 경기도 한 신도시의 3룸 빌라(2층으로 구성)에 동생과 함께 사는 A(남)씨는 얼마 전 집주인으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집주인은 빌라 외에도 아파트 2채를 소유한 다주택자 남성인데, 최근 보유세가 크게 오르면서 세금 낼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현금이 부족해져 자신이 거주하던 월셋집도 빼고 이 빌라에 들어오려 한다면서 A씨에게 재계약 없이 퇴거할지(올해 말 만기), 아니면 함께 전입신고하고 2층을 내어줄지 선택하라고 통보했다. A씨는 집주인의 황당(?)한 요구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100만원이 안 되는 월세에 이만한 집을 구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고민 중이다.
A씨 사례는 다소 극단적이지만 실제로 세입자가 사는 집에 전입신고를 같이할 수 있게 협조해 달라고 부탁하는 집주인들이 많아졌다.
서울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보유세 등 당장 세금지출을 줄이려는 것 외에도 나중에 매각할 때 양도세를 줄이려는 목적인 경우가 많다”면서 “2017년 8·2 대책 이후 조정대상지역에선 2년 실거주를 해야 양도세 비과세를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건축 아파트에서는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내보낸 후 전입신고만 해두고 빈집으로 두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후문이다.
이는 정부가 지난해 6·17 대책에서 2년 실거주한 재건축 아파트 소유자에게만 조합원 분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아직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지만 실제 시행될 때를 미리 대비하는 차원이다.
지난해 7월 말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으로 세입자는 계약 갱신을 청구할 수 있지만 집주인과 그 직계가족이 실거주를 이유로 퇴거해 달라고 요구할 때는 집을 비워야 한다.
집주인이 전입신고만 해두고 실제로 거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세입자가 법적 대응에 나서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따른다.
현직 공인중개사이자 재건축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았던 B씨는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내보내 놓고 빈집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소송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B씨는 “제가 공인중개사인데 이런 일을 당한 게 아이러니하다”면서도 “소송을 하려면 필요한 비용과 시간 및 정신적 스트레스를 고려하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설명자료에 따르면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 없이 ‘허위로’ 갱신 거절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위반에 따른 민법 제 750조 일반 불법행위로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
다만 서울시와 각 자치구에 따르면 집주인이 전입신고만 해두고 실제 기거하지 않는 ‘빈집’ 상태임을 지자체 차원에서는 일일이 확인해주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소명자료 준비부터 소송을 걸어 입증하는 것 모두 임차인이 직접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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