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소건 70% 계약변경, 나머지 30% 배액배상 등 포함
소유주·중개사 등 “분양가도 못 받아”“단지 내 이사인데 투기꾼?”
16건 거래된 화목팰리스, 분양가보다 낮춰 일괄매각한 사례
울산 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의 모습 [카카오맵] |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정부·여당이 주요 현안으로 제시한 ‘투기세력의 실거래가 조작’과 관련해 의심 대상이 된 단지를 중심으로 “졸지에 투기꾼이 됐다”는 주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헤럴드경제의 취재 결과 국회에서 주요 사례로 지목한 울산의 한 대단지는 거래 취소건의 약 70%가 계약내용 변경과 관련된 사항이었고, 나머지도 배액배상 등과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의 또 다른 단지 역시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일괄매각 하려다 거래가 불발된 경우로 투기세력의 시세조작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전국에서 주택 매매거래가 취소된 3만7965건 중 신고가(최고가) 등록 후 취소된 거래가 31.9%(1만1932건)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누군가 아파트 시세를 띄우려고 최고가 거래를 신고만 하고 바로 취소한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천 의원은 “울산 사례를 보면 투기세력의 실거래가 올리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엿볼 수 있다”며 ▷울산 동구 화정동 엠코타운이스턴베이(2015년 준공·1897가구) ▷울주군 두동면 화목팰리스(2014년·18가구) 등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지난해 신고가 거래가 많이 이뤄졌고, 거래 취소 사례도 나왔던 단지라는 것이다.
24일 국회와 국토교통부, 울산 동구청에 따르면 지난해 엠코타운이스턴베이에서 이뤄진 거래 215건 중 취소건은 19건이다. 이 중 5건이 당시 신고가를 기록했다.
거래 자체가 취소됐거나 실거래가 신고 후 계약 내용을 변경하기 위해 계약서를 다시 쓰게 되면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상 해당 거래건에는 ‘해제 여부’와 ‘해제 사유 발생일’이 표시가 된다.
이렇게 표시된 거래의 세부 내용을 파악한 결과, 매매대금 변경 8건, 매도인 변심 5건, 매수인 명의변경 3건, 거래당사자 간 합의 1건, 입력 착오 2건 등으로 나타났다. 통상 변경이나 입력 착오 등은 수정 개념이어서 투기세력의 실거래가 조작과는 거리가 있다고 동구청 관계자는 밝혔다. 실제 이 단지에선 거래 취소 후 같은 매물이 가격만 올라 재신고된 경우가 다수 포착된다.
매도인의 변심이나 거래당사자 간 합의로 취소된 사례(6건)는 의심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집값 상승에 따른 배액배상 등이 포함돼 투기세력의 실거래가 조작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의 설명이다.
이 단지에선 전용 101㎡가 지난해 9월 2일 4억6000만원에 매매돼 당시 신고가를 갈아치웠으나, 3개월 뒤 거래가 돌연 취소됐다. 같은 달 동일한 면적의 다른 매물이 5억9000만원에 거래되면서 이 사례가 일부 언론에 언급됐다.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는 “2건 모두 같은 단지 내에서 평형 갈아타기를 하려는 주민이었다”면서 “앞서 취소된 사례는 지난해 여름 거래됐다가 집값이 급격하게 오르자 주인이 중도금을 받기 전에 배액배상을 한 것인데 어떻게 투기세력의 실거래가 조작 의심 사례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지역 중개사들은 지난해 여름장과 가을·겨울장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 여름에 계약한 매도자들이 추후 가격을 1000만~3000만원 정도 올려달라고 요구한 사례가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울산 동구의 아파트값은 지난해 9월 말 상승 전환해 12월 셋째 주 주간 상승률이 0.71%로 고점을 찍었다.
울산 울주군 두동면 화목팰리스(2014년 준공·18가구) [천준호 의원실 제공] |
한 동짜리 단지인 화목팰리스는 일괄 매각하는 과정에서 거래가 불발된 사례였으나, 이에 대한 확인 없이 시세조작 의심 사례로 언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에선 16건이 지난해 3월 3일 거래됐다가 같은 달 일괄 취소됐다. 천 의원은 이에 대해 “조직적으로 주변 아파트 시세를 조작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언급했다.
화목팰리스 전 소유주는 “총 4명이 공동 지분으로 보유하던 건물의 분양이 안 됐고 분양가까진 못 받더라도 매물을 받아줄 매수자를 찾는 상황이었다”면서 “계약을 한 뒤 법무사가 정상적으로 실거래 신고를 한 것인데 이후 매수자가 잔금을 치를 수 없다고 해 계약을 취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5년과 2018년 거래건만 봐도 전용 81㎡ 기준 매매 가격이 1억8760만원인데 여기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시세조작을 하는 투기꾼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곳에선 지난해 전까지 거래가 단 2건 이뤄졌는데, 거래 사례가 거의 없다 보니 지난해 일괄 매각된 거래건에서 신고가가 대거 쏟아져 나온 것처럼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자료를 내놓은 천준호 의원실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서 신고가 등록 후 거래가 취소되고, 다음 거래건의 가격이 올라간 단지 등을 주요 사례로 추리면서 나타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의원실 측은 “실제 거래 취소나 중복 등록, 착오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앞서 밝혔다”고 말했다.
한편 국토부는 조만간 실거래 허위 신고 의혹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y2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