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조위 “실거주, 구체적인 사정 증명하라”
‘실거주 목적’ 계약갱신 거절 시 매도 제한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지 석 달이 지나면서 집주인(임대인)과 세입자(임차인)의 임대차 분쟁조정 사례도 쌓여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인 ‘집주인의 실거주’가 주된 갈등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권리지만, 권리행사 시기나 입증 여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만큼 이를 둘러싼 충돌은 계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헤럴드경제DB] |
11일 대한법률구조공단 산하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5억4000만원짜리 전세계약을 두고 임대차 분쟁조정이 이뤄졌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전세계약 기간은 2016년 11월~2018년 11월이었는데 재계약을 통해 2년 더 연장했다. 집주인은 세입자가 퇴거한 뒤 실거주할 계획이었으나, 세입자가 이사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요청해 추가로 6개월 계약 연장을 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가운데 7월31일 등장한 새 임대차법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불안케 만들었다. 6개월 연장을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로 봐야 할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이를 행사하지 않았다면 또 한 번 계약을 연장하자고 주장할 수 있다. 집주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거절할 수 있지만, 당초 계획했던 이사 일정에는 차질이 생긴다.
분조위는 6개월 연장을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로 볼 수 없다고 판단, 합의대로 세입자가 6개월 뒤 퇴거해야 한다고 봤다. 분조위는 “새 임대차법이 도입되면서 양 당사자의 지위가 불안정해 확실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라며 “집주인 역시 세입자가 계약갱신을 요구하더라도 이를 거절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실거주)가 있었다”고 했다.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를 거절하려면 이를 증명해야 한다는 분쟁조정 사례도 나왔다.
한 집주인과 세입자는 2018년 10월부터 2년간 보증금 2억3500만원의 전세 계약을 맺었다. 계약 만료를 약 3개월 앞둔 지난 7월 보증금을 약 40%(9500만원) 증액하면서 계약을 2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그런데 7월31일 새 임대차법이 시행되자,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 행사와 함께 임대료 증액 상한을 5% 내로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도 적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집주인은 “내가 살겠다”며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했다.
분조위는 집주인의 주장에 대해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한 경우 집주인에게 실거주 목적을 증명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며 “집주인이 구체적인 사정을 들어 증명하지 못한다면 세입자는 계약갱신요구권에 의해 임대차가 갱신되었음을 주장하면서 목적물의 인도를 거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사례에서 집주인은 실거주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보증금 증액분을 3500만원 낮춘 6000만원으로 조정해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기로 했다.
서울의 아파트 밀집지역의 모습 [헤럴드경제DB] |
새 임대차법에 따르면 집주인이 거짓으로 실거주 이유를 들어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하고 제3자에게 임대한다면, 기존 세입자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집주인은 계약갱신요구가 거절되지 않았다면 계약이 갱신됐을 기간만큼은 실거주한 뒤 임대할 수 있다. 적어도 2년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통상 계약기간이 2년이기 때문이다.
임대차법 상에는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한 집주인 적당히 실거주하다가 집을 팔 경우에 대해선 별도의 규정이 없지만, 정부는 이 역시 불법행위라고 해석했다. 집주인의 실거주 기간 역시 제3자에게 임대하는 경우를 참고할 수 있다고 봤다.
국토부 관계자는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을 침해하고 경제적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되면 민사상의 일반적인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도 사유 역시 계약갱신 거절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일부 사유만 인정될 것이라고 봤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집주인 사이에서는 세입자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한 뒤 실거주하고, 집을 파는 건 가능한 방법으로 거론됐었다”며 “사실상 이 방법도 차단된 것이기 때문에 실거주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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