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 속도·강도로 시장 대응
변동성 낮춰야 시장흐름 바뀔수
전세계 반등 대기자금도 엄청나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알 콰리즈미(al-Khwārizmī, 780-850)는 인도에서 도입된 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하여 최초로 사칙연산(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만들고 0과 위치 값을 사용한 페르시아의 수학자이다. 그의 책은 라틴어로도 번역돼 유럽에 전해졌는데, 그의 이름을 따 아랍식 기수법(記數法)을 알고리즘(algorism)이라 명명했다.
알고리즘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해진 일련의 절차인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활용되고 있고, 인공지능(AI)과도 밀접하다. 이미 1980년대에 금융에서 활용됐고, 1987년 증시 대폭락에도 개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알고리즘을 활용한 금융투자는 33년 전과 비교해 그 영향력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코로나19 대유행(pandemic)과 사우디-러시아 원유 전쟁이 촉발한 폭락장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아찔할 정도의 변동성이다. 10%대 변동폭은 흔하고 상품시장에서는 20~30%의 등락도 예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의 가장 큰 변화가 인덱스(index)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로 대변되는 패시브(passive) 자금의 확대다. 종목 선택의 위험을 줄이고, 낮은 비용으로 쉽게 거래가 가능한 특성이 장점으로 부각됐다. ‘따라만 가면’ 되는 투자인 만큼 인간보다는 알고리즘에 맡겨도 충분힌 운용이 가능하다. 미국 증시의 사상 최장 랠리는 추세를 따라가는 알고리즘과, 그에 몰린 돈이 만든 결과물이기도 하다.
위험헤지를 위한 파생상품 시장에서도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 투자가 확산됐다. 오랜 상승장은 그만큼 변동성(Volatility) 확대의 잠재확률을 높였고, 변동성을 통한 헤지 및 투기수요도 자극했다. 변동성을 읽어내고 대응하는 역할도 대부분 인공지능(AI)들이 대부분 맡고 있다. 주문 속도도 엄청나다. 지난 2012년 이후 미국 S&P500지수는 2018년 상반기까지 이렇다 할 큰 폭의 조정이 없다. 2018년 하반기 장단기 금리 역전이 나타나면서 변동성이 급상승했다. 이는 시장이 급락으로 이어졌다. 불안이 급락을 초래한 것이다. 불안이 심하면 공포가 된다.
이미 지난 해부터 미국에서는 ETF 등 패시브 알고리즘이 증시 하락, 또는 변동성 확대를 감지했을 경우 AI의 엄청난 반응속도를 감안했을 때 상당한 시장 충격이 나올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랐다. 하지만 역대 최장기간의 상승장에 취해 ‘카산드라의 예언’(Cassandra syndrome)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19는 우려에서 현실이 됐다. 이번 증시 폭락의 출발은 금융상품의 부실이나 실물경제의 타격이 현실화 되기 전부터 더 커진 공포다. 감염 공포와, 경제활동 중단에 대한 불안이다. 인간의 불안은 2월 하순부터 시장에 전달됐고, 이를 읽은 컴퓨터들은 일찌감치 위험자산 비중 축소에 들어갔다. 인간과 달리 컴퓨터들은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 팔고, 조건이 바뀌면 살 뿐이다. 냉혹한 컴퓨터들의 공세에 인간의 불안은 더욱 커져 미국 증시의 변동성지수(CBOE VIX)는 2008년 10월의 전고점을 넘어섰다.
반등을 기다리는 이들이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많다. 최근 시장 흐름은 변동성 지수와 상당 부분 동행한다. 공포가 불안으로 완화되고, 불안을 기대로 바꿀만 한 대책과 그를 뒷받침할 숫자가 나올 때 반등도 나타날 수 있다. 반등을 기다리는 자금이 천문학적이라는 점, 그리고 반등 때에도 AI의 반응속도와 강도는 엄청날 수 있다는 점은 꼭 염두에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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