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원대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권혁(61) 시도상선 회장이 지난 26일 검찰의 소환 조사에 불응한 채 병원에 입원, 주요 사건 당사자들의 병원행이 다시 입길에 오르고 있다.
권 회장은 25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으나 허리 디스크와 당뇨 등을 이유로 6시간만에 귀가했다. 검찰은 권 회장을 이튿날 다시 불러 조사를 하려 했지만 권 회장이 이날 검찰 청사가 아닌 병원에 나타나면서 수사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이처럼 주요 사건 당사자들이 검찰의 소환을 앞두고 약속이나 한 듯 앓아눕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 1월 태광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 당시 검찰의 소환에 세 번이나 불응한 이선애(82) 태광산업 상무다. 이 상무는 약 3개월간 병상에 누워 검찰의 잇따른 소환 통보에 병원 진료기록으로 답했다. 그러나 이 상무는 정작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고 나자 바로 퇴원, 입원은 결국 검찰 조사를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냐는 비난 여론이 거셌다.
지난해 12월에는 신한은행 고소-고발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이 정신적 피로를 호소하며 병원에 갑자기 입원했다.
정치인들도 검찰의 소환을 앞두고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008년 친박연대 비례대표 공천 의혹의 당사자였던 김노식 당선자는 입원을 했다며 검찰의 소환 통보에 불응했다.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됐던 김방림 당시 민주당 의원 역시 검찰의 계속된 소환 요구에 불응했다가 법원이 검찰에 체포요구동의서를 발부하는 일까지 있었다.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에 나오기 전에 병원부터 들르는 것을 하나의 ‘관행’으로 보고 있다. 조사 받는 입장에선 시간을 벌 수 있는데다 동정 여론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건 당사자가 고령인 경우 입원만큼 손쉬운 변명거리도 없다.
그러나 잦은 휠체어 출두에 대한 여론이 싸늘해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같은 병원행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검찰 관계자는 “검사가 피조사자의 건강상태 등 여러 정황을 참작할 수 있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꾀병은 오히려 수사 의지만 북돋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 태광그룹 수사 당시 검찰은 과거 재벌 총수의 휠체어 출두 사례를 모은 참고자료를 내 이 상무를 에둘러 비판했다. 권 회장의 입원 역시 검찰은 곧바로 정식 소환장을 보내고 체포영장까지 염두에 두는 등 강경한 입장을 내보였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