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제약에 있어 2011년 7월 21일은 끝내 지키려고 했던 ‘가치’가 외부의 힘에 의해 굴복된 날로 기록될 것이다. 피로회복제의 대명사 박카스는 그날 일반의약품에서 의약외품으로 자리를 바꿔야만 했다. 이냥저냥 슈퍼 진열대에 숱하게 널린 일반 드링크류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의약외품은 인체에 대한 작용이 적어 약사의 지도가 필요하진 않지만 의약품에 준해 판매되는 위생용품쯤으로 정리된다.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란 유명한 TV광고 문구마저도 문제가 됐다. 동아제약은 약사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박카스의 약국 유통을 일정 기간 지속하면서 ‘약국에 있다’란 광고를 계속 내보낸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를 위해 광고심의기구에 재심의를 요청, ‘판단보류’라는 의견까지 받았다.
그러나 의약품 관리감독당국은 약국 외 유통을 압박하는 동시에 광고마저 ‘현행법(약사법) 위반’ ‘지속 땐 행정처분 조치’ 등의 으름장을 놨다. 때문에 이 TV광고 문구는 이제 ‘약국뿐 아니라 슈퍼에도 있다’로 바뀌어야 할 처지가 됐다. 동아제약인들 심사가 뒤틀리지 않을까.
26일 이 회사는 문구 수정 않고 기존 광고를 이달 말까지만 방영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기존에 만들어놓은 3편의 후속작도 모두 폐기하고 새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박카스는 1961년 알약 형태로 처음 출시됐다가 1963년 현재와 같은 드링크제 형태로 바뀌었다.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이 ‘피로회복 및 간장보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이름으로, 술과 추수의 신(神) 바쿠스(Bacchus)를 당시 표기법대로 갖다 붙인 것이다.
박카스는 이후 2010년까지 47년간 지구를 50바퀴나 돌 수 있는 170억병이 판매됐다. 천안공장의 박카스 생산라인에서는 분당 2400병의 박카스가 생산된다. 이 속도는 기관총 발사속도의 4배에 달한다.
우리 산업사에서는 제품 발매 후 1년은 고사하고 몇 달도 넘기지 못한 채 고사하는 제품이 허다하다. 졸지에 의약외품이 된 박카스, 새 시장에 내던져진 박카스, 그 새로운 항해가 주목된다.
조문술 기자/freihei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