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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들이 그린 자화상>가감없는 당당한 필치는…정직한 내 삶의 분신
이상국
<자화상과 나>

나는 비교적 다른 작가들에 비해 자화상과 친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때, 전람회를 기획할 때, 으레 자신의 얼굴을 그려보곤 한다. 어렸을 때부터 무료하거나 한가할 때 손의 표정을 그려보기도 하고 거울을 앞에 놓고 얼굴을 그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손과 얼굴만큼은 아무런 대가 없이, 어려움 없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최고, 최선의 모델이었다. 손과 얼굴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다스리게 되고, 자신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대학입시 준비를 하면서 자화상과는 다소간 멀어졌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시 자화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2학년 학교 축제(제1회 학예제) 때 빌라 다르(학교 구내식당)에서 열린 표현주의 작가들의 자화상 전시였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자유분방한 필선, 칼자국ㆍ개성적인 표현은 본격적인 작품에서 느낄 수 없었던 싱싱한 호흡 바로 그것이었다.

목판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이상국의 ‘자화상’(2006년). 굵은 붓으로 거칠게 그린 표현주의적 성향의 인물화는 예술 앞에, 그리고 시대 앞에 당당하면서도 정직하고자 한 작가의 내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콜비츠가 좋았고, 코코시카, 베크만이 좋았다. 그림에 대한 자료도, 정보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 흑백 목판 자화상 사진 몇 점이 독일표현주의 미술에 푹 빠지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윤두서의 자화상, 추사의 초상화, 표암 강세황의 초상화 등 조선시대 뭇 선비들의 초상화를 보면서, 그림에서의 품격(品格)이, 화격(畵格)이, 엄격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주었던 시절이었다.

이번 전시를 계시로 그 동안 그렸던 자화상을 훑어보면서 아주, 아주 젊었을 때를 애틋하게 회상해 보기도 하고, 70, 80년대의 고통과 우울을 2000년대 초로의 회한을 느껴 본다.

산동네 마을에 우리의 어머니를 ‘대지의 신(神)’처럼 대입시켰다. ‘어머니Ⅲ’. 61×90㎝.(1982)

내게 있어서 자화상은 내 삶의 기록이고 내 그림, 작업 표현 변천의 궤적인 것 같다. 2011년 3월 15일.

<글ㆍ그림=이상국(화가)>



▶화가 이상국(64)은 1971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때 민중미술 진영의 ‘현실과 발언’ 창립에 관여했으나 이후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민중미술 ‘운동’과 거리를 두긴 했지만 교직을 병행하며 홀로 작업했던 그림에는 폭압적이었던 1970년대 시대상이 꾹꾹 담겨 있어 주목을 받았다.
 
‘맹인부부가수’ ‘공장지대’ ‘슬픔’ 연작에선 서민들의 팍팍한 삶이 묻어나며, 올곧은 저항의식을 보여준다. 90년대부터 서울 홍제동 인근의 산동네 풍경을 화폭에 담아온 이상국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문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했다. 나무와 산이 골격만 남아 무수히 반복되는 작업은 다양한 이미지로 읽힌다. 목판화 작업도 꾸준히 병행해왔는데 칼칼한 칼맛이 옹골찬 고집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영란 기자/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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