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동남권 신공항 원점 재검토’ 발언이 세간의 화제다. 부산 지역은 가덕도 신공항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건 지 오래다. 그런 부산 지역(영도)에서 그는 5선의 국회의원이자 지역 대표 정치인이다. 지역구 현안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게 정치권 풍토다. 김 전 의장이 누구보다 신공항 유치에 앞장서야 할 처지다. 그런데도 그는 지역 정서와 정면 배치하는 용감한 발언을 한 것이다. 선거와 표를 의식, 지역 민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으로선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김 전 의장의 소신 행동은 요즘 정치판에서 보기 힘든 대단한 용기다.
김 전 의장 발언 이후 부산 지역 민심은 펄펄 끓고 있다. 부산 지역 시민단체들은 “내년 총선에서 낙선시키겠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배신자’ ‘망언 정치인’ 등 험담도 서슴지 않는 분위기다. 밀양 신공항을 내세우며 가덕도와 유치 경쟁을 벌이는 대구·울산·경북·경남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까지 ‘신공항 백지화’를 우려, ‘김형오 때리기’에 합세했다고 한다.
그가 엄청난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원점 재검토를 주장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침묵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죄악”이라고 말했다. 밀양은 산을 10개나 깎아야 하고, 가덕도는 주변 수심이 깊어 매립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 경제성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논리에 이끌려 경제성도 기술적 타당성도 없는 신공항을 짓는 무모함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리한 공항 건설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자칫 국가의 미래를 흔들 수 있다. 김 전 의장이 어렵게 물꼬를 텄으니 이제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공약이 잘못됐음을 사과하고, 김해 대구 기존 공항 확장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정치적 부담이 크다고 시간만 끌다가는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만 커질 뿐이다.
동남권 신공항 파문은 무분별한 공약 남발이 얼마나 큰 정책적 혼란과 국론 분열을 가져오는지 거듭 일깨워주고 있다. 당장 표 때문에 충분한 검토 없이 공약을 내놓는 정치권의 행태는 국민이 응징해야 한다.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미 좀 본’ 세종시 공약으로 진절머리 나는 후유증을 이미 경험했다. 김 전 의장이 초심을 살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