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법안 판이한 개정과정
농협법 개정엔 18년 소요
정자법 개정은 번개처리
불신 자초행위 다시 없어야
농업협동조합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건 지난 4일 같은 날. 그러나 상임위 통과 개정 과정은 너무나 판이했다. 농협법은 정부 개정안의 국회 제출 1년3개월 만에 농림수산식품위 의결을 거쳐 입법 마무리 단계를 맞았다. 개정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1993년부터 따지면 18년이 걸린 셈이다. 그동안 무수한 공개 논의를 거쳤음은 물론이다. 정자법 개정은 행정안전위에서 이날 단 10분 만에 기습처리됐다.
개정안 상정을 사전에 몰랐다고 말한 상임위 소속 의원이 있을 정도였다. 작년 말 좌절된 첫 시도 때부터 계산해도 석 달이 채 안 걸렸다. 외부 공청회 한번 없었다. 여야 지도부 담합으로 전격 처리하려다 여론 역풍을 맞아 입법에 급제동이 걸렸다. 작년엔 개정방침 사실이 미리 알려져 여론 뭇매를 맞고 접었던 사안이다. 이번엔 아예 쉬쉬하며 넘어가려다 더 큰 국민 불신을 불러오는 결과를 낳았다.
농협법은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신경분리)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자조적 농민이익단체로 거듭나기 위해선 사업별 경영의 전문성과 생산성,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였다. 농협개혁론은 역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핵심 농정과제로 제시됐다. 그러나 정작 정부의 소극적 대처로 지지부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08년 12월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협이 번 돈은 농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강도 높은 농협 개혁을 촉구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가 개정안 마련 실무작업에 급피치를 올렸다. 국회의 농협법 개정 일등공신은 농림수산식품위의 최인기 위원장. 농림장관 경력의 야당 소속인 그는 농민 편에 서서 개정안 보완에 앞장섰다. 현재로서 농협법 개정 효과는 앞으로 개혁 발판을 딛고 얼마나 도약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정치자금 모금을 엄격히 제한한 현행 정치자금법은 16대 국회 말인 2004년 3월 정치관계법 개정 때 마련됐다. 연간 모금한도와 개인 기부한도를 대폭 줄였다. 법인, 단체 기부금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 소액 다수의 후원금 장려 제도를 만들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한나라당 간사였던 오세훈 의원(현 서울시장)은 17대 총선 불출마 배수진을 치고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오세훈법’이란 별명이 붙은 정자법 재개정을 둘러싼 찬반 양론이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취지는 좋은데 부자나 정치할 수 있어 현실을 무시한 법이란 주장과 함께 돈 안 드는 정치와 선거를 할 수 있어 좋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왔다. 작년에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 입법로비 사건이 터졌다. 검찰 기소로 재판을 기다리는 사건 관련 여야 의원 6명에게 면죄부를 주고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쉽게 모금하려다 파동을 일으켰다.
공정사회를 지향하자는 마당에 이번 정자법 파동은 큰 아이러니다. 문제는 정신자세이다. 몰래 기습처리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걸 이해하기 어렵다. 비난 여론 이후 정치권 반응이 더 한심하다. “검찰권 남용을 막기 위해 불가피했다” “개정 추진 여건이 안 돼 있는 것 같다”는 발언에서 여론은 아직도 안중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아, 이런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답답하게만 여겨진다. 입법권을 남용해 불신을 자초하는 불행한 사태는 우리 국회에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농협법 개정에서 보듯 의원들의 전체 정상적 입법활동 이미지마저 함께 훼손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