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씨는 학원 수강생이 사용하는 주판을 일본에서 사오고 있다. 주산교육이 사라지면서 국내 주판 생산업체가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주산교육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주산을 ‘하나의 도구’로 치부한 한국과 주산을 ‘하나의 교육’으로 판단한 일본, 주판 수입의 뒷배경에는 이러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
70~80년대만 해도 주산이 국제대회로 열리던 시기였고, 일본은 꼴찌를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는 게 이 씨의 기억이다.
그는 “대회에 참가하면 일본에서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비결을 묻는 등 한국의 실력을 따라잡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회상했다.
일본 역시 전자계산기, 컴퓨터 보급 등을 거쳐 주산 열풍이 주춤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교육 시장에선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주산협회에서 활동 중인 고경옥 숙명여대 교수는 “일본의 경우 공무원 채용 과정에서 주산자격증에 가점이 부여되기도 한다”며 “한국에서 한순간 주산교육이 사라진 것과 달리 일본은 계속 명맥을 이어가며 실력을 쌓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주판 생산업체가 사라진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최근 주산교육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주판 생산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전문업체 생산이 아닌 단순 조립생산에 그치고 있다.
이 씨는 “전문적으로 주판을 생산하는 업체가 없고 공장 라인 일부에 주판을 조립 생산하다보니 질적으로 떨어진다. 일본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라고 전했다.
고 교수는 “장기적으로 주산 실력을 국가공인으로 인증하는 게 필요하지만 우선 교과서 등을 통해 주산을 전 국민에 알리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주산을 직접 배우며 효과를 체감했던 부모 세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주산교육을 제대로 부활할 수 있는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김상수 기자 @sang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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