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락폭 큰 싱가포르 현물가격과 연동
국제유가-국내유가 비대칭성 발생
수입급증 불구 재정부 유류세 인하 난색
정유사들 등유가격은 계속 올려
책임 떠넘기기 급급…소비자 부담만 가중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유사와 일전(一戰)을 선언했다. 윤 장관은 경제난 속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본 정유사를 향해 “가격 인하 요인이 충분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말의 성찬’일 뿐이다. 지난 2008년 MB정부 출범 직후 석유가격을 잡겠다며 정유 4사로 굳어진 ‘석유유통구조’를 깨기 위해 주유소 폴사인제 폐지, 대형마트 주유사업 진출 허용, 정유사별 가격공개, 주유소 간 수평거래 허용 등의 조치를 단행했지만 효과는 별로였다. 정부와 정유사 간 책임 떠넘기기 식 논리 싸움에 소비자는 여전히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다. 체감할 만한 대책이 나온 건 아니다. 나올 것 같지도 않다. 이런 상황을 비웃기나 하듯 10일 석유제품 가격은 또 올랐다.
▶‘오늘도 휘발유 가격은 오른다’=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오피넷)에서 집계한 보통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ℓ당 0.23원 오른 1844.68원을 기록했다. 1900원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다. 서울지역에서 휘발유를 1ℓ에 2000원 넘게 파는 주유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정부는 국내 정유사의 막대한 수익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SK에너지)의 작년 매출액은 43조8700억원으로 작년보다 22.4%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조700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무려 88.0% 급증했다. GS칼텍스 역시 지난해 35조3000억원 매출에 1조2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정유사는 수출로 이익을 봤다고 항변하지만, 국내 판매로 손해를 봤다는 얘기는 없다.
정부로부터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 지난달부터 정유사는 주유소에 공급하는 보통 휘발유 값을 ℓ당 10원 정도 찔끔 내리긴 했다. 하지만 소비자나 정부 눈에 덜 띄는 등유 공급가격은 계속 올렸다. 올 1월 넷째주 실내등유, 보일러등유 세전 공급가는 바로 전주보다 ℓ당 20원 안팎 상승한 894.57원, 895.77원을 각각 기록했다.
현재 범정부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가 가동되고 있지만 눈에 띌만한 성과를 낼지 장담하기 어렵다. 지경부 관계자는 “정유사의 내부 자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는 한 가격 구조의 문제점을 세밀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한계를 설명했다. 현재 국내 석유제품 값은 등락폭이 큰 싱가포르 현물가격과 연동해 책정된다. 그래서 가격의 비대칭성이 생긴다. 국내 유가가 ‘오를 때는 로켓이고 내릴 때는 깃털’인 이유다. 작년 3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정유산업의 경쟁상황과 가격결정 패턴 보고서’를 통해 1997년부터 2008년 11월까지 싱가포르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제휘발유 가격이 1원 오를 때마다 국내 휘발유 소매가격은 1.24원 상승한 반면, 국제휘발유 가격이 1원 내릴 때 국내 휘발유 가격은 0.92원 하락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유사는 환율 상승분이 고려되지 않았으며, 가격의 비대칭성 분석은 시장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상대적 지표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세금에 붙는 탄력세율만 내려도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휘발유 기준으로 탄력세율(11.4%)이 적용된 교통세 529원, 교육세 79.35원, 주행세 137.54원이 기본적으로 부과되고 여기에 수수료와 부가세를 합하면 평균 900원 이상이 세금으로 지불된다.
정유사를 압박하는 정부도 별로 할 말은 없다. 기름값 상승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면서도 재정부는 유류세 인하에 대해 유보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정부는 휘발유, 경유에 붙는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로 12조33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거뒀다. 교육세 세수도 막대하다. 휘발유에서 8076억원, 경유에서 1조419억원에 달하는 교육세를 징수했다. 주행세 등 다른 세금을 감안하면 정부가 석유제품을 통해 거둬들이고 있는 수입 역시 막대하다.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 수입은 정부가 유류세를 반짝 인하했던 2008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 유류세수는 유가 상승에 힘입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쪽 다 말꼬리 잡기식 논쟁만 반복하는 사이 소비자만 고스란히 그 부담을 다 지고 있는 셈이다.
김형곤ㆍ조현숙 기자/kimhg@heraldcorp.com